Pokemon/Short Story

[다이유우] 별

Pialati 2016. 8. 22. 00:00

츠와부키 다이고x유우키
소재 제공: 트위터 @stone_10good 님.
Written by 비아라티



이끼 우주센터에 딸린 천문대는 천년에 한번 칠일간 깨어난다는 지라치를 조사하던 중, 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호연에는 별을 관측할만한 곳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 다이고가 설립한 천문대였지만 결국은 반쯤 취미로 시작한 탓에 전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천문대의 주 관람객은 우주가 익숙한 이끼시티의 아이들이나 체육관 관장인 풍과 란. 이따금씩 다른 도시에서 관람객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우주센터의 연구원들의 설명까지 들으며 관람할정도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다지 없었다.
하긴, 그냥 고개만 들어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펼쳐지는데.
취미든 뭐든 본인이 설립했기에 천문관장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다이고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천문대의 연구원들이 퇴근한 늦은 밤의 천문대를 홀로 거닐었다.
우주센터에는 당직을 서는 연구원들이 있지만 천문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거대한 장비들을 손으로 쓸어보고 별자리를 소개한 사진들 앞에서 이따금씩 발을 멈춰 보았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천문대의 이 시간을 즐길수 있다는게 천문관장이 된 가장 좋은점이 아닐까.
운석을 전시한곳 앞에서 멈춰 운석을 감상한다. 소라이시 박사가 기증한 운석은 좀처럼 보기 힘든 규모와 형태를 지니고 있어 다이고가 즐겨 찾는 전시품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얼마쯤 빈 천문대를 거닐었을까. 관측실을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다이고는 아직 셔터를 내리지 않은 정문의 유리문 앞에서 웅크리고 앉은 소년을 발견했다.

"…유우키?"

자신을 꺾고 새로운 챔피언이 된 소년. 호연을 구하기 위해 애쓴 영웅이 어째서 이 시간에 이런곳에서 웅크리고 있을까. 반쯤 놀란 기분으로 잠긴 문을 열어 소년의 등에 손을 덮어보자 얼마나 있었는지 차가운 몸으로 소년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년에게 웃어보인 다이고가 소년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유우키 군, 잘 지냈어?"

그의 질문에 소년은 무엇인가 말하려는듯이 몇번 입을 벙긋이더니 이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떨궜다.
이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것일까, 하루카에게 연락을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이고는 소년을 데리고 관장실로 향했다.
유우키의 차가운 몸에 담요를 둘러주고 풍과 란이 왔을때 내어놓던 핫 초콜릿을 만들어 건네주었다. 따듯한 머그컵을 양손으로 모아쥐고 후후 입바람을 부는 소년의 모습에 작게 웃은 다이고는 잠시만, 양해를 구하고 관장실을 나섰다.
이 시간이면 자고 있으려나.
발랄한 소녀 트레이너에게 연락을 시도하자 뜻밖에도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금세 연락이 닿았다.

-다이고 씨?
"아, 안녕. 하루카?"

의아스러운 목소리에 쾌활한 목소리로 답한 다이고는 소년의 이웃이자 친구인 소녀에게 용건을 꺼냈다.

"지금 유우키 군이 이끼시티에 와 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말을 않던데."
-아앗! 거기 있었어요? 나참, 지금 센리 아저씨랑 아빠랑 저랑 찾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아줌마도 걱정하고 계셨다구요!

쨍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손목의 통신기를 손으로 덮은 다이고가 힐끗 관장실을 돌아보았다. 유우키 군이 들었으려나. 듣지 못했어야 할텐데.

"하루카, 조금만 소리를 낮춰서."
-알았어요.

속삭이는듯한 목소리로 대답한 하루카가 통신기 너머에서 한숨을 내 쉬었다.

-다이고 씨, 유우키 지금 말 못해요. 배틀도 못하죠. 최소한의 지시도 지금 못내리고 있으니까요. 방법이야 찾아보면 있겠지만 지금 걔가 자신감을 잃어서…….

하루카가 말 끝을 흐린다. 유우키가 말을 못한다고? 안하는것이 아니라? 어째서, 당황한 다이고가 소리를 낮춰 잠긴 목소리로 묻자 통신기 너머에서 앓는 소리가 돌아왔다.

-왜, 히가나 씨 일 있었잖아요. 레쿠쟈 사건과 초고대 포켓몬 사건. 그게 많은 부담이 되었었나봐요. 함묵증이래요 유우키.

말을 할 수 있음에도 말을 하지 못하는 함묵증. 심리적 증세라는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부탁해 함께 호연을 구하겠다고 나서 놓고도 결국 소년에게 기대야했던점을 떠올리며 다이고는 벽에 기대 손등으로 눈을 덮었다.

-다이고 씨, 유우키가 거기까지 간걸 보면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요. 저희가 데리러 갈 수는 있겠지만 유우키가 메모도 남겨놓지 않고 갔으니까 아마 저희는 안될거예요. 부탁드려요. 유우키를 도와주세요.

하루카의 침울한 목소리를 끝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어린 소년에게 막대한 짐을 지워놓고서 아무것도 못했던 무력한 자신. 결과가 좋았다고 모든것이 끝이 아니었음을 생각했어야 했다. 가족과 친구, 좋아하는 포켓몬과 지내는것이 즐겁고 포켓몬 배틀의 승패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고작 열두살의 어린 아이에게 마그마단과의 싸움을 도와달라 청했던것은 자신이었다.
그란돈의 폭주를 막아달라 부탁한것은 자신이었다.
미쿠리가 각성의 사당에 소년을 밀어넣는것을 막지 못한것도 자신이었다.
즐거워야할 포켓몬 배틀을, 승리하지 못하면 가족이, 친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대지가 망가질것이라며 필사적으로 대처해야했던 소년을 생각했어야 했다.
승리해야 한다는 강박증. 한번이라도 패배하면 소년이 발을 디딘 이 호연이 멸망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
다이고의 눈을 가린 손등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눈물을 닦아내고 어둠속으로 몸을 감췄다. 달빛이 하얗게 부서지는 창가에서 담요를 두른 소년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 유우키 군. 나왔어?"

그의 목소리에 방향을 찾은 소년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미안해, 잠시 일이 있어서."

정말로 미안해. 부담을 느낄까봐, 걱정한다는것을 알면, 하루카와 연락을 한것을 알면 불편해 할까봐 진심을 담은 사과를 가볍게 포장해 본다.

"유우키 군은 천문대에 온거니까 별을 보러 온거겠지?"

소년의 고개가 끄덕끄덕 재차 움직였다.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며 다이고는 유우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얀 달빛에 금세라도 부서져버릴것 같은 소년의 손목을 잡고 조심스레 당긴다. 어둠 속에서 소년을 보호하듯 품어 안은 다이고가 소년의 토닥였다.

"원래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지만, 이럴때 쓰라고 있는게 권력 아니겠어? 오늘은 유우키 군. 너 한사람만을 위한 천문대란다."

빛이 강하면 별빛은 가려지니까, 조명은 켜지 않을게.
작게 속삭이고 플라네타륨에서 화려하게 펼쳐진 별자리를 감상한다. 각각의 별자리에 얽힌 일화가 미쿠리의 목소리로 흘러나오고 반짝이는 눈으로 별자리를 바라보며 연신 입을 벙긋대다가 때때로 시무룩해보이는 모습을 보며 다이고는 유우키의 손을 잡았다.
플라네타륨을 지나 약한 조명만 켜져있는 운석실을 관람하고 도로별 밤하늘 사진을 전시한곳을 지나 최상층의 관측실로 향한다.
커다란 망원경을 통해 보석과도 같이 촘촘히 박힌 별하늘을 바라본 유우키가 소리없이 탄성을 내뱉는 모습에 미안한 마음을 웃음으로 가리고 다이고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우키 군, 이쪽."

야외 관측 실습을 위한 옥상으로 데려가 풍성하게 펼쳐진 밤하늘을 보여주자 소년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유난히 맑은 기후를 자랑하는 이끼시티답게 맑고 깨끗한 하늘에서 금세라도 별이 쏟아져 내릴것만 같았다.
넋을 놓고 하늘을 올려보는 유우키를 잠시 바라보던 다이고가 야외 관측을 위해 항상 상비해두는 돗자리와 간식들을 꺼내와 자리를 만들고 유우키의 어깨를 톡톡 쳤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이고를 돌아보는 소년의 얼굴에 드러난 희열에 다이고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돗자리를 가리키고 이내 먼저 돗자리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유우키 군, 누워. 별은 누워서 보는게 가장 좋아."

조심스레 다가와 곁에 누운 소년의 시야에 하늘이 담긴다. 저마다의 빛으로 반짝이고 아름다운 별. 낮에도 밤에도 날 그 자리에 있으면서 변함없이 빛나고 있으나 낮에는 태양의 그 강한 빛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태양이 자리를 비키고 나서야 겨우 존재를 드러내는 별빛이지만 그렇다고 낮에 빛나지 않는것이 아님을 안다.

"유우키 군은 별을 닮았어."

문득 들려온 말에 유우키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려 다이고를 바라보았다. 옆으로 돌아누워 유우키를 바라보며 다이고는 한 손을 들어 유우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나 늘 빛나고 있는데, 그 빛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것 같아. 잠시만 빛나는 태양이나 달이 아니라 늘 빛나고 있는 별."

어린 아이의 그 반짝임이 사그라드는 모습이 이렇게까지 아플줄은 몰랐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다이고는 유우키를 보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맞아, 유우키 군. 그거 알아? 별은 조용히 그 자리에서 사람의 눈물을 보고, 웃음을 보고, 일생을 지켜본대. 한 사람을 지켜보는 별은 여럿이라서,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별이 있고 병을 고쳐주는 별, 죽음을 막아주는 별 등등 굉장히 많대."

금방이라도 쏟아져내릴것같은 검은 하늘의 반짝임들을 옆으로 두고 있다가 다시 바로 누워 하늘을 보며 유우키의 손을 잡은 다이고가 다른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 별 중에 네 소원을 들어주는 별 하나, 병을 고쳐주는 별 하나."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것을 느끼며 다이고는 유우키를 곁눈질했다. 착하고 여린 소년의 눈에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저 많은 별들 중에, 유우키를 지켜주는 별도 있어."

입술을 꾹 깨물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 작은 소년을 어떡해야 할까.

"미안해. 고마워."

미안해.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어린 네게 너무나도 큰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했던 내가 미안해. 어린 네가 즐겁게 살아갈수 있도록 어른인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 미안해. 그렇지만. 이 세상에, 이 땅에, 이 호연에 와 주어서 고마워. 호연을 지켜주어서 고마워.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그 모든 마음을 함축적으로 담아 중얼거린다.
다이고의 손에 잡혀있던 소년의 손이 빠져나가 스스로의 목을 움켜쥐었다.

"아, 아, 으…!"

몇번이고 벙긋대던 입이 억눌린 소리를 뱉어냈다. 태아마냥 몸을 웅크리고 목을 부여잡고 소리를 내려 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다이고는 등을 토닥였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 유우키 군."
"……니예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이고, 씨가, 미안할게, 아니예요."

띄엄띄엄 떨어지는 말에 놀란 눈을 해 보이던 다이고가 조용히 웃어보였다.

"유우키는 오늘 왜 왔는지 물어봐도 될까?"
"소원을, 빌려고요. 자꾸, 그날, 꿈을, 꿔서……."

그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돼.
품에 꼭 들어오는 작은 아이를 끌어안고 다이고는 한숨을 내 쉬었다.
날이 밝으면 함께 여행을 가자. 윗슈 지방 라이몬 시티의 유원지라면 즐겁게 놀 수 있지 않을까.
하루카도, 미쿠리도 떼어놓고 단 둘이서. 자신이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이 아이가 마음을 놓고 아이답게 놀 수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