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성호] 소꿉친구
소꿉친구: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Written by 비아라티
아, 꿈이다. 이건.
사랑동이와 바다를 헤매던 중 우연히 도착한 이끼시티에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마을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던 중, 우주센터의 앞에서 또래의 아이를 만났다.
메탕이라는 희귀한 포켓몬을 데리고 선 소년. 단정한 멜빵바지 차림의 소년은 루네에서 본 또래의 아이들과 달리 성숙했고 어른스러웠으며 습관과 같은 미소와 친절함으로 상냥하게 말을 걸어와 성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마을은 처음이냐며 고개를 갸웃이고는 놀라우리만치 예의바른 모습으로 우주센터를 안내하던 소년은 루네의 아이들과 달리 점잖고 예의바른, 마치 어른과도 같은 인상을 주었다.
처음에는 길을 잃고 우연히 찾아간 이끼시티였지만 나중에는 일부러 곧잘 찾아갔었다. 해저동굴 탐방을 즐기는 루네의 아이들과 달리 점잖은척 하지만, 데리고 있는 메탕을 정말로 사랑하는 소년이 좋아서. 루네를 탈출해 사랑동이와 함께 이끼시티의 성호를 만나기 위해 향했었다.
몰래 마을을 나서다가 샤크니아 떼에게 쫓기기도 했지만 이끼시티에서 기다리던 성호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고, 성호가 가진 돌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것이 즐거웠다.
위험하게 혼자서 바다를 돌아다닌다며 누나에게도 혼이 나고, 일족의 어른들께 아단님의 뒤를 이어 루네 체육관과 각성의 사당, 그리고 하늘기둥의 봉인을 지켜야 하는 사명의 무거움을 알고 반성하라며 집에 갇혔지만, 스승인 아단님 만큼은 어슴푸레한 미소를 띄고 콧수염을 매만질뿐이셨다.
수조속에서 뻐끔이는 사랑동이를 보며 윤진은 입을 비죽였다. 갇힌지 며칠이 지났더라, 오늘도 성호는 해안에서 기다리고 있을텐데. 휘록응회암이라는 돌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준다며 눈을 반짝이던 친구를 생각하고 윤진은 살짝 웃었다. 솔직히 이야기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열정적으로 돌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성호의 모습이 부러웠다.
"야, 너 아단님 제자면서 요새 수련 안하고 놀러다닌다며? 넌 놀면 안되잖아. 제정신이야?"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윤진은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봉긋 솟은 둥근 머리카락. 자신과 같은 연녹빛 머리카락의 루네 일족의 아이. 창틀에 매달려 빼꼼히 고개를 내민 아이는 기가차다는듯이 윤진에게 말을 쏟아냈지만 성호 외의 또래 아이와 이야기 해 본 일이 거의 없는 윤진은 소심하게 반론을 제기해 보았다.
"왜, 나는 놀면 안되는데?"
"아단님의 제자는 체육관 관장이 되어야 하잖아. 그건 무지 힘들고 강해야 해서 너는 놀면 안된대."
찾아온 마을 아이의 말에 그제서야 제가 아단님의 제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단님의 제자가 된다는건 놀면 안되는거였나, 윤진은 다리를 모아 끌어 안았다. 이크, 창 밖에서 들리는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에 아이가 창문에서 사라진다. 곧 멀리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이자 윤진은 입을 비죽이고 다리사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윤진."
웅크리고 있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귓가에 닿은 스승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자 콧수염을 매만지며 한손으로 뒷짐을 진 스승님이 문을 등지고 서 계셨다.
"그렇게 그 친구가 좋니?"
스승님의 물음에 윤진이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그 친구는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니?"
알지도 못하고 이상한 애라며 함부로 말하는 루네의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아이의 모습이지만, 스승님이라면 괜찮아.
스스로에게 말하며 스승님의 물음에 대답하려던 윤진은 멈칫했다.
성호는 어떤 사람일까. 돌을 좋아하고 메탕과 함께 이끼시티에서 혼자 사는 어른스럽고 예의바른, 너무나도 소중한 친구. 처음으로 사귄 친구.
자신을 아단님의 제자가 아닌, 그냥 윤진으로 봐 주는 유일한 사람. 아, 성호와 함께 있어 즐거웠던 이유는 그 아이가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일족의 어른들께 혼나더라도 기를 쓰고 탈출한 이유가, 그 아이와 함께라면 편해서였던거였나.
또르륵, 윤진의 볼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좋은, 친구예요."
윤진을 바라보던 아단이 콧수염을 매만지며 빙그레 웃어보였다.
"샤크니아에게 쫓기면서 찾아갈 정도로?"
"네."
단호한 대답에 아단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윤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빙글 몸을 돌렸다.
"네 말대로, 좋은 친구를 사귀었더구나."
아단이 당겨 연 문 너머에 익숙한 미소를 띈 성호가 새하얀 꽃 다발을 안고 서 있었다. 커다란 무장조가 성호의 등 뒤에서 날개를 펼쳐보인다.
"…성호?"
"오늘 아침, 하늘을 통해 왔더구나."
아단의 대답에 피그점프마냥 윤진이 뛰쳐나갔다. 성호가 안고 있던 하얀 꽃다발이 두 사람의 사이에서 뭉개지고 일그러져 꽃잎이 휘날린다. 자신을 부둥켜 안은 윤진을 어색한 손길로 토닥이는 성호를 보며 아단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며 바다를 건너는 너나, 널 만나겠다며 하늘을 건너오는 네 친구나. 못말리는 녀석들이로구나."
다가온 아단이 몸을 숙여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고, 바닥에 떨어진 하얀 꽃을 집어들었다.
"윤진, 네가 의무때문에 포기해야 할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친구와의 시간도, 네 자유도. 넌 하고싶은대로 하면 된단다."
스승님의 말을 되새기며 깬 윤진의 눈에 화병에 새하얀 작약 꽃을 꽂아 넣는 성호가 비쳐졌다. 영원히 함께 할 친구.
"깼어?"
옛날과 다름없는 얼굴로 웃어보이고 다시 꽃을 꽃는데 집중하는 성호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윤진이 피식 웃었다. 이제는 안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저 얼굴이 지금 얼마나 피곤한지. 쉬러 와 놓고 또 무언가를 하고 있네. 침대에 엎드려 살짝 찌푸린 얼굴과 하얀 꽃송이들의 위치를 연신 바꾸는 성호의 모습을 바라보던 윤진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성호, 옛날부터 그 꽃을 가져오는 이유 물어봐도 될까?"
비쳐드는 햇살을 뒤로 하고 성호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수줍음이 많은게, 널 닮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