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나위없이 평화로운 오후였다.
방에서 책에 몰두하고 있는 트레이너를 두고 집안을 돌아다니던 루브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방에 놓인 잡지를 들여보았다. 사람의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정도는 루브도도 볼 수 있었고, 짙은 갈색의 무언가가 쌓여있는 사진과 함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는 사진이 함께 있었다. 이게 뭘까, 여기에 낙서를 하면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게 무엇인지 루브도는 몰랐다. 이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걸 주면 남자와 여자는 좋아하는 모양이다. 단순하게 생각한 루브도는 손뼉을 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열린 방문 사이로 슬그머니 들어가자 여전히 그의 트레이너는 독서에 열중이었다. 저렇게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을때는 방해하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떠들어도 잘 듣지 못할테지만, 그래도 시끄럽게 굴면 형사구스에게 혼난다.
루브도는 살그머니 발을 옮겨 방 한켠에 웅크리고 있는 형사구스에게 다가가 등을 콕콕 찔렀다. 형사구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자 형사구스의 앞발을 잡아끌며 방을 나서려 했다.
책을 읽는 일리마를 힐끗 바라본 형사구스가 일리마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따라나섰다. 루브도가 무슨 일을 하려는건지는 몰라도,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역시 밖으로 나가야했다.
자다 깬 탓인지 부루퉁한 형사구스를 이끌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루브도가 주방에 놓인 잡지를 가리키며 연신 떠들었다. 부루퉁한 얼굴로 흘깃 잡지를 돌아보던 형사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루브도는 득의양양한 얼굴로 제 가슴을 두어번 내리치더니 그대로 형사구스를 이끌고 한손에 잡지를 쥔 채로 집을 나섰다.
어쩐지, 함께 나가는 형사구스의 표정이 어두워보였다.
“어라, 일리마네 루브도하고 형사구스 아냐?”
“그러게? 일리마는 어디가고 둘이 돌아다녀?”
하우올리시티의 길을 걷는 루브도와 형사구스를 발견한 주민들이 궁금한 얼굴로 포켓몬들을 주시했다. 일리마의 루브도와 형사구스는 하우올리시티 내에서도 자주 모습을 나타냈었고 모두에게 익숙한 존재였기에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트레이너 없이 포켓몬만 돌아다니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주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루브도와 형사구스를 보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던 루브도가 이내 형사구스의 손을 놓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당황한 형사구스가 그 뒤를 쫓자 먼저 도착한 루브도가 신난 얼굴로 무엇인가를 주워들었다. 반짝거리는 유리구슬. 그 모습을 본 형사구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곧 득의양양한 얼굴로 동전을 주워들었다.
약속이나 한 듯 루브도와 형사구스는 마을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반짝거리고 작은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유리구슬과 동전, 조개껍데기와 깨진 그릇조각, 조약돌, 그리고 관광객이 흘리고 간듯한 깨진 반지와 외짝 귀걸이등을 모아들고 형사구스와 루브도는 다시 마을을 걷기 시작했다.
“!!!”
루브도와 함께 걷던 형사구스가 급히 뛰기 시작했다. 양손에 쥔 걸 흘리지 않도록 꼭 모아쥔 루브도가 엉겁결에 같이 뛰었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은채 짐을 나르고 있는 것을 다가간 형사구스가 짐을 가져가 들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몸짓으로 열심히 설명하는 형사구스의 뜻을 알아챘는지 할머니가 화색을 띄며 방향을 가리켰다. 할머니의 짐을 옮겨다 드리고 수고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자 형사구스가 부끄러운 얼굴로 웃었다. 곁에 함께 선 루브도가 제 머리도 쓰다듬어달라며 머리를 들이대자 할머니가 웃으며 루브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브도, 손에 쥔건 뭐니?”
할머니의 물음에 루브도가 소중히 쥐고있던 손을 펼쳐보였다. 뾰족한 그릇조각이 루브도의 손을 찔러 피가 나고있었지만 개의치않는 듯이 반짝거리고 작은 물건들을 내보이며 자랑스럽게 웃어보이는 루브도의 모습에 할머니는 흐뭇하게 웃어보였다.
“잠깐 이리 줘보겠니?”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갸웃이던 루브도가 이내 손을 오므린채 고개를 저었다. 거부의 의사에 웃으며 손수건을 꺼낸 할머니가 루브도의 손을 잡아끌었다.
“손이 다치면 안되니까, 자 됐다.”
루브도의 양손에 곱게 쥐여져있던 물건들을 손수건에 감싼 할머니가 돌려주자 갸우뚱 하던 루브도가 손수건 뭉치를 받아들었다.
“조심히 가렴.”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루브도와 형사구스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하우올리시티는 루브도와 형사구스에게 더할나위없이 익숙한 도시였지만 둘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루브도가 정했던터라 형사구스는 루브도를 쫓아 걸었다.
이윽고 도착한곳 앞에서 루브도는 형사구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짤랑, 청명하게 울리는 방울 소리에 고개를 들었던 점포의 주인은 문앞에 선 두 마리의 포켓몬을 보며 고개를 갸웃였다.
“루브도하고 형사구스?”
머뭇거리며 밖에 서 있는 포켓몬들을 잠시 보던 주인은 이내 두 포켓몬이 왜 들어오지 않는지를 알았다. 그가 운영하는 점포는 초콜릿과 케익등의 디저트류를 판매하는 상점. 음식점이기에 털이 날릴 가능성이 있는 그들이 들어가도 되는지 알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일리마의 포켓몬. 예의바르고 상냥한 트레이너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러운 포켓몬들의 모습에 주인은 카운터에서 나와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일까?”
주인의 물음에 루브도가 꼬리로 둘둘 말아 지니고 있던 잡지를 들어 펼쳐보였다. 초콜릿의 사진을 가리키고 단단히 움켜쥔 손수건으로 감싼 무엇인가를 내미는 루브도의 모습에 점포의 주인은 저도모르게 웃어버렸다.
“초콜릿? 초콜릿을 사러 온거야?”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루브도의 모습에 실소를 터트린 주인은 루브도의 손에서 손수건 뭉치를 받아들고 카운터로 되돌아갔다.
펼쳐진 손수건 속에는 유리구슬과 조개껍데기, 깨진 조각등 실제적인 값어치는 얼마 되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 있었지만 내용물을 확인한 주인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다시 손수건을 포장했다.
“잠시만 기다리렴.”
아직도 문 밖에서 기다리는 포켓몬들의 모습을 즉석 카메라로 촬영해 동봉한 주인은 사진을 초콜릿과 함께 포장해 루브도의 손에 쥐어주었다. 신난 얼굴로 연신 손을 흔들며 돌아가는 포켓몬들에게 손을 흔들어준 주인은 루브도가 가져왔던 꾸러미를 떠올리고 다시 웃었다. 사람의 화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포켓몬들이 저희의 트레이너를 위해 화폐와 비슷한, 반짝거리고 작은것들을 가져왔다. 아마도 루브도와 형사구스의 눈에는 화폐와 비슷한,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일 터였다.
트레이너를 위해 선물을 사러 온 루브도와 형사구스.
점포의 주인은, 포켓몬들의 선물을 받을 일리마가 어떤 표정을 지어보일지 궁금해졌다.
솔비아님께서 말씀해주신 발렌타인데이의 리퀘스트입니다.
일리마에게 줄 선물을 사러 다니는 루브도와 형사구스라는 주제였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