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kemon/Short Story

[알렉신록] 메테의 코어는 연녹색

Pialati 2018. 6. 14. 22:35

[자컾주의]

신록과 알렉에게 보내는 키워드 : 언덕, 입맞춤, 나뭇잎


-, 꼬맹아.”

자신을 저렇게 부르는 사람은 단 하나. 디디에게 공을 던져주던 신록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어울리지 않게 나무로 짠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알렉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을 두 번 깜빡이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신록을 보며 알렉은.

봤으면 반응이라도 하지?”

웃어야 할지 인상을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웬 바구니예요?”

이모님의 심부름.”

이모님이요?”

아침도 대충 먹었다며?”

알렉이 내미는 바구니를 받아든 신록은 작지 않은 바구니 안에 한가득 담긴 샌드위치를 비롯한 도시락을 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메테와 디디도 먹성이 꽤 좋긴 하지만 역시 너무 많다. 이모님의 손이 크신건 알고 있었지만 늘 너무 많으시다니까. 그렇지만 이모님께서 만들어주신 음식들을 남겨 버릴수도 없어서 어쩌지, 하던 신록에게 쭈그리고 앉아 디디에게 공을 던져주며 물어와를 시키고 있는 알렉이 보였다. 한 사람과 두 포켓몬이 다 먹지 못한다면, 한 사람과 두 포켓몬이 더 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은 거기까지.

아저씨, 혹시 바빠요?”

? 아니?”

그럼, 소풍 안가실래요?”

조금전 알렉에게 넘겨받은 바구니를 들어보이며 신록은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알렉의 냐스퍼를 안은 신록의 바로 곁에서 디디가 꼬리를 살랑이며 힘차게 발을 내 딛었다. 조금 뒤쪽에서 바구니를 들고 걷는 알렉과 앞쪽의 신록 주변을 메테가 연신 오가며 걷는 숲길에는 야생 포켓몬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에 잎사귀가 부딪히며 울리는 숲의 음악 뿐이었다.

소풍이라더니 어디까지 가려고? 이쪽은 평소에 산책하는 길도 아닌데.”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전에 메테가 이쪽으로 사라져서 찾으러 다니다가 찾은 곳이라서.”

메테가? 위험하니까 혼자 찾으러 다니지 말고 부르래도.”

디디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해사하게 웃어보이는 신록의 발치에서 디디가 왕! 울었지만 알렉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위험한건 너희가 아니라, 너희를 만난 야생 포켓몬이겠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별거 아냐.”

후후, 도착했어요.”

신록의 웃음에 이븐곰의 서식지인가, 긴장하며 무성하게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도착한곳은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커다란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기분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언덕. 바람에 따라 소미안들이 둥실 날아오르는 모습에 눈을 끔뻑인 알렉이 한박자 늦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멜레멜레 화원이지 여기?”

네에, 정식 루트가 아니라 다른 쪽으로 들어오긴 했지만요. 대신 사람도 적어서 감상하기에는 좋아요.”

노랗게 펼쳐진 꽃밭에서 둥실 떠다니는 소미안에게 겁 없이 다가가는 메테와 신나서 꽃밭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디디를 보며 신록이 알렉을 잡아끌었다. 한두번 드나든 것이 아닌지 까치발을 세워 나뭇가지 사이에 끼워둔 매트를 꺼내 나무의 그늘에 자리를 마련한 신록이 손을 내밀자 알렉은 실소를 터트렸다.

꼬맹아, 여기 네 비밀기지니?”

아뇨.”

이모님이 챙겨주신 샌드위치를 하나 꺼내 내민 신록이 가벼운 턱짓으로 꽃밭의 포켓몬들을 가리켰다.

손님이예요.”

알렉은 유쾌한 기분으로 신록의 곁에 앉아 엉겁결에 받은 샌드위치를 베어물었다. 샛노란 꽃잎들을 풀썩이며 신나게 뛰어노는 가디와 소미안에게 공격받고 쏜살같이 신록에게로 도망오는 메테노를 보며 그의 냐오닉스를 꺼내자 알렉의 냐스퍼를 안고 있던 신록이 냐오닉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바구니에서 나무열매를 꺼내 화원 여기저기로 던졌다.

.”

다같이 먹어야 맛있는걸요.”

방금 던진 나무열매중에 두리열매 있는거 봤는데?”

신록이 입을 가리고 소리없이 웃는 모습에 알렉은 짧게 혀를 차고 바구니 안에 뭐가 있나 뒤적이기 시작했다.

학교는 좀 어때? 합숙 이후로 조금 달라진 것 같던데.”

재미있어요. 숙제는 여전히 싫지만, 선생님도 친구들도 재미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재미있다면, 지난번에 말한 그 알에서 시마사리가 태어났다던 생약방집 친구?”

알렉의 물음에 신록은 터져나온 웃음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이전에 아저씨가 멋대로 쫓아왔던 밤산책에서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통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었지만 설마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었다.

아니면 그 친구인가? 춤추는거 좋아한다는 어린 친구. 얘기 들은것만 보면 메테하고도 잘 놀 것 같던데.”

여전히 웃음이 터지려는 입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는 신록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뜬 알렉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 친구구나, 땅에서 멀미해서 육지에서도 파도타기 하고 다닌다는 서핑 광!”

푸훗!”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이 더 이상 막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알렉은 만족스레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었다. 신록의 높은 웃음소리가 포켓몬의 울음소리로 가득하던 화원을 넓게 울리자 멀리서 놀고 있던 메테노와 가디가 귀를 쫑긋 하며 신록을 돌아보았다. 만족스럽게 웃던 알렉은 나른한 태도로 한쪽 무릎을 세워 턱을 괴고 매트에 거의 드러누워 웃고 있는 신록을 바라보았다. 꼬맹이가 소리내서 웃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정도면 합숙 이야기를 캐물어두었던 보람이 있는데?

아하, 아하하, , 어떡해.”

너무 웃어서 흘러나온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신록은 몸을 바로 세웠다. 여전히 한쪽 무릎에 턱을 괸 채 신록을 보던 알렉은 바구니에서 꺼냈던 후르츠밀크 캔을 건네주었다.

뭐가 그렇게 웃겼어?”

그 셋을 아저씨가 기억할줄은 몰랐거든요.”

다른 친구들도 아는데? 칼로스에서 왔었다는 도련님하고 멜리시 페어하고 네모난 코일을 데리고 있는 친구, 귀여운 꽃집 아가씨 친구하고 또 누구였지, 청소를 좋아하는 친구?”

알렉이 손가락을 꼽으며 말하는 트레이너 스쿨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신록은 폭소를 터트리며 발라당 드러눕자 알렉은 몸을 바로 세우며 신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거 괜찮은데? 평소 얌전하고 상냥한 얼굴을 하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눈에 보이는 활달한 반응을 보이는 일도 적은 신록이 이렇게까지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이모님께 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꺼내보는건 어떠시냐고 말씀 드려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알렉은 누워있는 신록의 머리를 토닥였다.

왜 그렇게 기억하고 계시는거예요. 다들 좋은 친구들인데. 카이나니도 셀브도.”

한참을 웃던 신록이 겨우 웃음을 멈추고 내뱉은 말은 가벼운 핀잔을 가장한 불만이었다.

그거야 꼬맹이가 이름을 안알려줬잖아.”

그랬어요?”

눈을 두어번 끔벅이고 일어나 앉은 신록은 후르츠밀크 캔을 따며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말한 생약방집 딸 이름은 셀브예요. 셀브가 만드는 디저트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그리고 칼로스 꽃집 아가씨는 린. 도련님이라고 한 에르노는 서로 메테하고 옴느가 바위타입을 가지고 있으니까 돌보는 방법같은걸 공유하거나 한다구요. 그리고 카이나니하고 카이안은.”

친구들 이야기에 들뜬 신록과 이야기를 들어주는 알렉이 이야기에 몰두한 나머지 서로 얼굴이 가까워질 무렵, 갑작스런 돌풍과 함께 무엇인가가 알렉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

지나치게 가깝게 보이는 짙은 자수정빛의 눈동자에 알렉은 눈을 깜빡이다가, 한박자 늦게 급히 몸을 뗐다. 아직 매트에 누워있는 신록은 멍한 모습이었지만 분명 입술에 와 닿았던 감촉은 분명.

사고다. 이건 절대로 사고다. 꼬맹이한테 입맞춤이라니, 이게 무슨. 패닉에 빠진 알렉이 그제서야 시큰거리기 시작한 뒤통수를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때린 것이 무엇이었을까. 샛노란 꽃밭 위에 나동그라져있는 연녹색 코어 상태의 메테를 발견 한 순간 알렉은 저도 모르게 양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저씨?”

신록의 목소리에 흠칫 한 알렉은 힘겹게 얼굴에서 손을 떼고 신록을 돌아보았다.

, 꼬맹.”

알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까치발을 세운 신록의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짖궂은 웃음을 지은 신록을 놀란 눈으로 보던 알렉은 이내 코웃음을 치더니 신록의 머리카락에 붙은 샛노란 꽃잎과 나뭇잎을 떼어냈다.

이모님께는 비밀이다.”

바람에 날려갔던 신록의 모자를 물어온 디디가 빈사상태에 빠진 메테에게 신록의 모자를 덮었다.

나무 그늘의 옆으로 하나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