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lati 2018. 7. 8. 21:30

깊은 밤 새벽, 방문을 빼꼼 열고 주변을 둘러보던 신록은 곧 문을 닫고 침대에 베개로 만들어둔 위장이 그럴듯한지 다시 살펴보고 창문을 열었다.

몇 번이고 사용했던 튼튼한 줄사다리를 내리고 창문을 넘어 벽을 타고 내려가는 신록의 주변에서 메테가 즐거운 듯이 맴돌다가 이웃집 창문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발견하고 쪼르르 다가가자 창문 너머로 탈출하는 신록을 구경하던 알렉은 검지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며 쉿, 작게 소리냈다.

갸웃이려다 한바퀴 크게 빙그르 돈 메테는 창문이 열리지 않을것이라는 것을 곧 깨닫고 간식을 얻어먹긴 글렀다 싶어 깔끔히 흥미를 접고 거의 땅에 다다른 신록의 곁으로 돌아갔다.

메테, 할배 아직 자는 것 같으니까 들키기 전에 빨리.”

호기심 많은 메테가 또 어디로 사라질라 손짓을 하며 신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리에시티의 외곽에 있는 나시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 창가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시선은 끝까지 알아채지 못한채.

안녕하세요.”

어이쿠, 꼬마 아가씨, 오늘은 늦었네?”

호쿠라니 큰산 아래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시동을 끈 채 문이 열린 버스에 올라타며 신록이 인사하자 버스의 뒤쪽에서 쉬고있던 운전수가 사람좋은 얼굴로 웃으며 운전석으로 향했다.

어쩌다보니까요. 쉬실텐데 죄송해요. 운행시간 끝난건 아니죠?”

걱정스러운 신록의 물음에 시동을 걸고 버스의 문을 닫은 운전수가 씩 웃었다.

아가씨가 와야 끝나는 시간이지. , 출발할테니 어서 앉아라.”

.”

메테노를 데리고 뒤쪽 좌석에 앉는 것을 확인한 운전수가 사이드미러 아래에 있는 작은 거울을 건드려보고 버스 위에 올라탄 할비롱을 확인한 뒤에야 액셀을 천천히 밟았다.

벌써 몇 년째 매일같이 천문대에 오르는 저 아가씨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호쿠라니 큰산의 명물이었다. 호쿠라니 큰산에서 훈련을 하는 트레이너중에서는 저 아가씨가 커서 천문대 직원이 될거라면서 내기를 건 사람도 있었고 천문대 직원 사이에서는 아르바이트라도 해보지 않겠냐며 권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정작 저 아가씨는 단순히 별이 좋은 것 같았지만.

, 도착했다.”

굽이굽이 휘어진 도로를 따라 달린 나시 버스가 호쿠라니 큰산의 정상에 위치한 정류장에 멈추자 신록은 감사합니다, 인사를 잊지 않고 메테노와 함께 내렸다. 산 아래와 달리 확연히 가까워진 하늘을 올려다본 신록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한 것을 보며 나시 버스 운전수는 귀가시간을 재며 시동을 끄고 휴식에 돌입했다.

메테와 함께 천문대의 입구를 기웃대던 신록이 안쪽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시야의 한구석에서 꾸물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소리없이 웃었다.

메테, 쟤 전지칠 맞지?”

열심히 꾸물거리며 천문대 밖의 어딘가로 기어가고 있는 전지충이는 분명 천문대의 멀레인과 캡틴인 마마네가 돌보고 있는 전지충이들중의 한 마리가 틀림없었다. 메테도 슬쩍 다가가 어슬렁대며 말을 붙이자 금세 저희들끼리 떠드는게 영락없이 또 밥먹다말고 어딜 가던 모양이었다.

멀레인 아저씨가 걱정하시겠다.”

메테가 시선을 끄는 사이 도망가던 전지칠을 안아든 신록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천문대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나다를까 먹이먹기를 끝낸 전지충이들의 수를 세며 뒷머리를 긁적이던 멀레인이 신록과 전지칠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이거야 오늘도 수고를 끼쳤구나!”

늘 많은걸 알려주시는걸요. 여기요 전지칠.”

고맙구나. 그런데 오늘은 조금 늦었는데, 내일 학교는 괜찮겠니?”

멀레인의 질문에 시선을 회피한 신록이 부자연스럽게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에 다가갔다.

와아, 별이 굉장히 예뻐요!”

변함없이 제멋대로구만 꼬마 아가씨. 오늘도 망원경 쓸거지?”

! 부탁드려요!”

언제 딴청을 피웠냐는 듯이 대답하는 신록의 모습에 멀레인이 손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연구원이 신록을 데리고 관측실로 향했다. 방문객들에게 우주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관측실은 가끔 있는 관광객들과 소수의 마니아들이 방문할때를 제외하면 거의 비어있었고 그 덕분에 신록은 언제나 호쿠라니 큰산에 오면 제일 먼저 관측실에 들러 실컷 구경을 한 뒤에 하늘을 보며 걸어 내려가는 것이 일과였다.

하늘도 맑아 관측하기에 최적이라는 연구원의 설명을 한귀로 흘리며 대형 망원경에 얼굴을 가져다대고 반짝이는 별들을 구경하는 신록의 곁을 떠난 메테가 연구원의 코일 주변을 맴돌며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멀레인이 관측실에 들어섰을때는 연구원이 익숙하게 새콤라사다 조각을 던져주며 메테가 망원경을 건드리지 못하게 주의를 끌고 있었다.

메테는 여전히 활달하구나.”

호기심도 여전해서요. 어제도 본 풀숲인데 아침에 또 풀숲에서 헤매고 있었어요.”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신록이 대답하자 멀레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보니 벌써 3년이구만. 3년 전의 오늘, 천문대 밖에서 하늘을 구경하던 멀레인은 망원경을 통한 관측이 끝나고 돌아갔던 신록이 몬스터볼을 든 채 불안한 얼굴로 도로를 따라 달려오는 모습에 신록을 맞으러 갔었고, 신록의 손에 쥐인 초승달이 그려진 특이한 디자인의 몬스터볼-분명 송호 오 박사가 주었던 문볼-을 보고 의아해했었다. 포켓몬센터에 가야한다며 보채는 신록을 천문대 앞의 포켓몬센터로 안내하고 쉬고 있었을 직원을 부르자 신록은 그 몬스터볼에서 연녹색의 코어가 드러난 메테노를 꺼냈었다. 꼼짝도 못하고 빛이 약해져가는 메테노를.

그날의 약해져만 가던 메테노가 저렇게 호기심 많고 대담한 녀석일줄 누가 알았으랴. 메테노가 죽지 않아 다행이라던 별을 좋아하던 꼬마 아가씨는 그 이후로 항상 그 메테노와 함께 천문대를 찾았다.

아저씨?”

어느새 관측을 끝냈는지 망원경에서 벗어나 멀레인 앞에 서있는 신록의 모습에 멀레인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고 신록과 눈높이를 맞췄다.

, 다 봤니?”

. 이제 밖에서 보려고요.”

돌아가기 전에 들르지 않을거지?”

“? .”

언제나 천문대에서 관측을 하고 나면 도로를 따라 걷다가 찾으러 온 나시 버스를 타고 10번 도로로 돌아가는 것을 아는 멀레인이었기에 신록이 의아한 얼굴로 답하자 멀레인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작은 상자를 꺼내 건넸다.

생일축하한다. 메테와 만난 날도.”

.”

멈칫한 신록이 상자를 열자 푸른빛의 혜성 조각이 푹신한 쿠션 위에 놓여있었다. 이걸로 다섯 개. 매번 생일마다 혜성 조각이 담긴 상자를 건네주는 멀레인. 메테에게도 딱딱한돌을 건네준 멀레인을 꼭 끌어안고 떨어진 신록은 활짝 웃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천문대를 나와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게 뻗은 도로를 따라 걸으며 신록은 드물게도 헤실거리며 웃었다.

신록 자신도 잊고있던 생일. 매년 생일이면 고향인 인주시티에서는 대나무장식을 내놓고 소원을 적은 종이를 걸었다. 훈련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매일을 같게 생각하시는지 생일이나 정월같은것도 챙기지 않으셨지만 마을을 장식한 대나무장식을 발견하셨을 때에야 겨우 그러고보니 네 생일이었지~ 라며 가지고 놀기 좋은 규토리열매들을 주시곤 하셨었다. 날이 바뀌는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부모님의 영향인지 신록 자신도 날짜에 대해 상당히 무딘 편이었는데, 이모님의 손을 잡고 알로라로 와서도 한동안 잊고 있던 그 생일을 떠올린 것은 이모님이 운영하시는 전통찻집의 입구를 꾸민 칠석 기념 대나무장식 때문이었다.

칠석의 사흘 전, 음료를 운반하던 이어롭과 꾸꾸리의 상태를 체크하며 카운터에서 주문을 체크하시던 이모님 곁에서 가게 안을 구경하다가 문득 생각난김에 사흘 뒤가 벌써 생일이네요. 하고 이모님께 말씀드렸다가 그런 중요한 것을 이제야 이야기 하면 어떡하냐며 당황하시는 이모님의 말씀에 오히려 신록이 당황했던게 몇 년 전의 이야기.

신록에게 있어 생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고 그날은 모두가 밤늦게까지 떠들썩하게 노는 날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정말 신록 자신도 생일을 잊고 있었고 대나무장식을 보고 기억이 나서 이야기 했을 뿐인데, 사흘 뒤 신록은 찻집의 주방을 전담하는 마릴리와 리자드, 럭키로부터 높게 쌓인 달콤한꿀이 끼얹어진 경단과 나무열매 케이크, 그리고 이모님의 포켓몬들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열매, 반짝거리는 돌 등을 받았다. 지금 신록이 늘 쓰고 다니는 모자 또한, 그때 이모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그날, 처음 받아본 축하와 선물에 얼떨떨해하는 신록을 안고 이모님은 말씀하셨었다.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지금까지 잘 버텨 주었고 앞으로는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된다고. 모두가 널 만난 것이 기뻐서 준비한 선물이라고.

까만 밤하늘에 빼곡하게 빛나는 별을 목이 아플정도로 고개를 치켜들고 바라보며 걷고 있으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해 위험할게 뻔했지만 오랜시간 이 길을 걸은 신록의 몸이 기억하는 감각과 여차하면 메테가 몸으로 밀어 방향을 틀어준 덕분에 무난히 넘어지지 않고 길을 따라 내려오던 신록의 시야에 빠른속도로 떨어지는 유성이 보였다. 

"메테, 가보자."

귀가시간이 늦었지만 메테를 만난것도 오늘같은 날이었다. 또 어떤 메테노가 근처에 떨어졌을지 모른다. 기분좋은 날이니만큼 못본척 지나갈수도 없어 달려간 신록은 풀숲 한가운데 생긴 둥근 구덩이와, 그 안에 박힌 운석을 보고 눈을 비볐다. 메테노는 아니고, 정말 운석?

가까이 다가간 신록은 곤란한 얼굴로 운석을 내려보다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들어올리고 고개를 갸웃였다. 생각보다 가볍다. 앓는 소리를 낼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운석을 안아들고 어쩌지 고민하던것도 잠시, 이만한 크기의 운석이라면 멀레인 아저씨에게 가져다 드리는게 낫겠다 싶은 신록은 그대로 지금껏 내려온 길을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천문대 소장인 멀레인 아저씨는 운석에 대해서도 잘 아실테니까.

한참을 걸어 되돌아간 천문대에서는 연구원이 의아한 얼굴로 신록을 보았다. 그날의 관측을 끝내면 돌아오는 일이 없는 신록을 천문대의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연구원을 보며 신록은 운석을 들어보였다.

"멀레인 아저씨 보여드리고 싶은데요."

"호오? 따라오시죠."

본래대로라면 관계자외에는 출입할수 없는 구역으로 신록을 안내한 연구원은 멀레인에게 신록의 방문을 알리고 먼저 돌아갔고, 신록은 커피잔을 든채로 다가온 멀레인을 보며 품안의 운석을 들어보였다.

"운석?"

"조금 전에 떨어진건데 하나도 안뜨거워요. 전혀 메테노같이 생기지도 않았는데요."

"그건 좀 별난데. 잠깐 내가 봐도 될까?"

멀레인의 질문에 신록은 팔을 쭉 뻗어 운석을 내밀었다.

"원래 아저씨한테 맡기려고 한걸요."

그 순간 신록은 운석에서 기묘한 감각을 받았다. 마치 가디의 목을 끌어안고 있을때와 같은 느낌의― 고동.

신록의 양손에 들린 운석이 푸르게 빛을 내기 시작하자 멀레인이 안경을 고쳐 썼다. 운석의 고동에 맞춰 빛이 점점 강해져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지경에 다다른 순간 운석은 강한 빛을 내 뿜었다. 이건 바로 눈앞에서 플래시를 맞은거나 다름 없겠는데, 운석의 빛때문에 눈을 감은 멀레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눈을 뜨고 다시 한번 안경을 고쳐썼다.

신록의 양 손 위로 빛을 내던 운석은 온데간데 없고, 샛노란 별을 닮은 포켓몬이 둥실 떠 있었다. 저건 분명.

"신록."

"네?"

아직 눈을 뜨지 못한 노란 포켓몬을 양손에 받쳐든채 어리둥절한 얼굴로 신록이 멀레인을 보았다.

"그 포켓몬은 내게 맡기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려무나. 밤에 또 올거지?"

"네."

"그럼 어서 돌아가는게 낫겠다. 시간이 너무 늦었어."

멀레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노란 포켓몬을 넘겨준 신록이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던 멀레인은 품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노란 포켓몬을 보며 심란한 얼굴을 해 보였다.

한편 부리나케 천문대를 뛰쳐나와 정상의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나시 버스에 올라탄 신록은 멍하니 멀레인에게 넘겨주었던 노란 포켓몬을 떠올렸다. 처음보는 포켓몬. 알로라의 포켓몬들에 대해 적혀있는 도감 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그 포켓몬을 멀레인 아저씨는 분명 알고 있는 눈치였는데.

"도착했다."

어느새 멈춘 버스에 신록은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화들짝 놀라 버스에서 내렸다.

아저씨 오늘도 감사합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생일 축하한다.”

아저씨도 기억하고 계셨구나, 운전수가 쥐어준 작은 들꽃을 쥐고 신록은 10번 도로를 달음박질 쳤다. 하늘에 뜬 달을 보니 더 늦으면 할배가 물고 갈게 뻔하다. 그럴바에는 스스로 뛰어가는게 나았다.

?”

분명히 아까 나올때까지만해도 꺼져있었는데? 환하게 불이 켜진 집을 보며 고개를 갸웃인 신록은 줄사다리를 타고 창문으로 들어가는 대신 현관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 퍼펑-!

문이 열리자마자 들려온 폭죽 소리와 화려한 색종이가루들이 휘날리자 신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깔모자를 쓴 포켓몬들을 보았다.

어딘가 즐거워보이는 이모님과이웃집의 이상한 아저씨-알렉-. 그리고 아저씨-알렉-의 포켓몬들과 이모님의 포켓몬, 가게에서 일하는 포켓몬들까지 모두 색색의 고깔모자를 쓰고 신록을 보며 웃고 있었다.

꼬맹이,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한단다 아가.”

얼떨떨한 얼굴로 멈춰선 조카를 집 안으로 끌어당기며 이선은 기쁜 낯으로 웃었다. 매년 생일때마다 해줘도 부족한 말이지만 그래도 늘 하고 싶은 말.

"모두들 널 기다리고 있었어. 와줘서 고맙구나."

오늘은 칠석. 어느 지방에서는 일년에 단 하루 사랑하는 연인이 만나는 날이기도, 어느 지방에서는 천년에 단 일주일 깊은 잠에 빠진 포켓몬이 깨어나 소원을 들어주는 날이기도 한다지만 이선에게 있어서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귀한 조카가 세상에 나온 특별한 날.

"아가, 사랑한다."




-77신록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