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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 외로움 본문
신록
[외로움]
*주의/ 트리거 워닝 - 아동학대
분명, 웃는 얼굴로 헤어졌을 터였다. 배를 타고 떠나가는 친구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같은 학교의 친구들과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약속되어있던 이별이었기에.
이선은 한숨을 내 쉬며 문틀에 기대섰다. 해도 졌건만 불도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들리는 것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울고 있는 가디와 가끔 첨벙거리는 빈티나의 물장난 소리 뿐.
보다 못한 그녀는 또다시 한숨을 내 쉬며 어두운 방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아가.”
침대 위에서 무릎을 세워 고개를 묻은 채 웅크린 조카를 보며 이선은 조심스레 조카를 불렀지만, 고개조차 들지 않는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차고 침대의 한편에 앉았다. 분명 목소리가 들렸고 침대의 매트리스가 흔들렸을 텐데도 미동조차 없이 웅크리고 있는 신록의 모습은 이선에게 있어서는 오랜만에 보는 조카의 외로움.
이선은 손을 뻗어 신록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의 조카는 언제나 외로웠다.
깊은 새벽, 한껏 잘 자다가 벌떡 일어나 훈련을 할 거라며 뛰쳐나가던 성도지방에 사는 언니가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몇 년 만에 언니를 만나러 갔던 그 날. 인주시티의 포켓몬센터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조차 잊은 언니 부부에 대해 속으로 험한 말을 내뱉으며 물어물어 찾아간 언니의 집에는 예닐곱 살 즈음의 어린 아이가 소파 위에서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악취가 풍기는 집 안에서, 혼자.
소파의 근처에서 딱구리가 경계하는 모습으로 아이를 지키듯이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이선은 분노를 느끼고 스스로 놀랐다. 언니에 대해서는 이미 옛날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무슨 짓을 저질러도 화는커녕 언니가 또? 하고 넘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너라도 있어줘서 다행이구나.”
소파 주변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딱구리를 보고 이선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집 안을 둘러보며 입술 안쪽의 여린 살을 짓씹었다.
그래, 주소도 알려주지 않은 언니의 집을 찾아 올 수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지. 훈련에 눈 돌아간 미친 부부의 집.
사람이 살기나 하는지, 정돈이라고는 하나도 되지 않은 엉망인 집. 사람이 사는 온기와 생활감은 찾아볼 수 없는 집을 둘러보며 대체 얼마나 애 혼자 두고 집을 비운 거냐며 욕설을 내뱉은 이선은 방문 선물을 한편에 내려두고 청소를 시작했다.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포켓몬들의 도움을 받아 방과 거실, 부엌까지 청소한 이선이 몇 개나 되는 커다란 봉지에 쓰레기를 담아 밖에 내놓으며 청소 끝이라는 생각에 손을 털고 있자 이웃인지 어느 부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집 부인과 닮았는데, 친척이우?”
“동생이에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이고, 동생분이구나!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애가 몇 주를 저러고 있었는데!”
부인의 말에 척추를 타고 내려가는 싸한 느낌에 이선이 멍청한 얼굴로 눈을 끔벅이며 되물었다.
“네?”
“거 이 집 부부가 훈련 가면서 대신 애 봐주러 온 거 아니우?”
뭔가 잘못 됐다. 결혼한 언니가 딸도 낳았다고 자랑하기에 자신도 어느 정도 알로라에서의 생활이 정리되어 만나러 온 건데, 이게 무슨 소리지?
“아무리 포켓몬이 있다고 해도 가족이 같이 있는 게 최고지! 안 그래도 요새 아파보여서 걱정했는데 친척분이 오셔서?”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어진 부인의 말을 끊고 이선은 급히 인사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청소하는 모습을 본 탓일까 이선에 대한 경계를 거둔 딱구리가 소파의 곁에 달라붙어 아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모습에 다가간 그녀는 코를 찌르는 진물냄새에 인상을 찡그리고 청소하는 내내 자고 있기에 많이 피곤했나 싶었던 아이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안은 순간 이선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는지 아이의 그 작은 몸이 불덩이같이 뜨겁다. 게다가 넘어졌는지 깨진 무릎은 제대로 치료조차 되어 있지 않고 더러운 상처는 곪아 진물이 말라붙어있었다.
“진짜, 이 미친 언니가.”
급히 물을 데워 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아주고, 곁에서 떠나지 못하는 딱구리를 흘깃 보며 이선은 최소 2주 이상 집을 비운 것이 분명한 언니 부부를 향해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었다.
청소하면서 발견했던 아이의 방에서 꺼내온, 오래된 먼지 냄새가 풀풀 나는 옷으로 어쩔 수 없이 갈아입힌 이선은 늘 가지고 다니는 응급키트로 아이의 무릎을 소독하고 그대로 아이를 안아 올렸다.
인주시티는 몇 번 와 본적이 없었고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녀가 알 리가 없었지만 적어도 포켓몬센터는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응급 환자예요!”
포켓몬을 위한 병원이지 사람을 위한 병원은 아니지만 응급사태때는 치료만 할 수 있으면 어디든 좋았고, 그것은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인지 포켓몬센터의 직원은 이선의 품에 안긴 아이를 스트레쳐카에 실어 어디론가 데려갔다.
몇 시간에 걸친 집중치료 끝에 고비는 넘겼다며 애를 방치하면 어뜩하냐며 무책임한 부모 대신 혼난 이선은 밤새 꼬박, 아이의 곁을 지키며 결심했다. 아이는 내가 데려가자.
며칠 뒤, 겨우 건강을 회복한 아이를 안아들고 언니의 집으로 돌아온 이선은 아이의 이상행동을 알아챘다.
“안녕? 엄마 동생이야. 이모라고 부르면 돼. 넌 이름이 뭐니?”
아이가 불안할까 일부러 목소리를 높게 내며 물은 질문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예닐곱 살 정도의 아이가 어느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다는 것은 미혼인 그녀도 아는 일이다. 그러나 언니의 아이는, 간간히 딱구리의 울음소리를 흉내내거나 울음소리에 가까운 의성어와 몸짓만을 할 뿐,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설마 말도 가르치지 않은 건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던 이선의 눈에 작은 아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딱구리의 손을 잡고 돌아다니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이선을 한번 돌아보고 그대로 소파 위에 놓인 물건들을 모두 밀어 자리를 만든 뒤 그대로 올라가 앉는다. 아이에게 있어 초면의 상대일 텐데도 딱구리가 경계하지 않으니 괜찮다는 듯이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묻어 웅크렸다.
그 옆에서, 딱구리가 똑같이 웅크린다.
언니 부부가 돌아올 때까지는 방관하고 있으려던 이선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부부를 기다리느니 찾아 나서는 게 빠르겠다고 생각하고, 그녀의 할비롱을 꺼냈다.
“곧 돌아올게. 절대 아이를 혼자 두지 마.”
아이를 좋아하는 포켓몬이기에 불안하긴 해도 지금까지 아이를 돌봐왔던 딱구리와 함께 있어 달라 부탁하며 집을 나온 이선은 그녀의 드래곤 포켓몬들을 모두 꺼냈다.
“드래곤하고 전기타입이야. 알겠지? 가브, 언니를 찾는 거야. 보나마나 훈련하고 있을 테니까. 너희만 믿는다.”
다섯 마리의 드래곤 타입 포켓몬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이선은 집으로 돌아갔다. 웅크린 아이의 곁에 앉아 서툴게 등을 토닥이며 이선은 본가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그날 저녁, 이선의 한카리아스를 비롯한 다른 포켓몬들에게 끌려오다시피 돌아온 언니와 형부는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부모가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딱구리 근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에 이선은 한숨을 내 쉬었다.
“언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말이지? 네가 온다고 했으니까 당분간 훈련은 안 가려고 했거든. 만나기로 한 날에 없으면 분명히 너 또 화낼 테니까. 그런데 이이가—.”
“하하하, 훈련을 빼먹으면 냉동빔이라도 맞은 기분이라서. 처제가 오려면 몇 주 남았으니까 잠깐만 다녀오려고 했는데 글쎄 시간이 그렇게 흘렀지 뭐야?”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형부와 그 옆에서 동조하듯이 웃고 있는 언니의 모습에 이선은 쾅, 테이블을 내리쳤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내 약속 때문에 화내는 걸로 보여요, 둘 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용케 우리 집까지 왔더라? 역시 내 동생. 이야~ 훈련하고 와서 집 깨끗한 게 처음이었는데. 너 역시 우리랑 안 살래?”
“시끄러워요! 지금 그게 문제냐고 이 미친 언니야! 나는 둘째 치고, 애를 혼자만 두고 나가는 부모가 어디 있어!”
“뭐? 혼자라니, 말이 심하네. 제대로 딱구리가 함께 있었잖아. 네가 뭘 몰라서 그렇지 신록이가 얼마나 다부진데. 혼자서 화장실도 잘 가고, 딱구리가 먹을 것도 잘 챙겨준다? 이상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딱구리가 지켜 줄 테니까 괜찮아.”
기특하다는 듯이 신록의 머리를 쓰다듬는 언니의 모습에 이선은 정말 오랜만에 말문이 막혔다.
언니와 만나기를 싫어했던 이유가 기억났다. 언니는 늘 이런식이었고,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듣지를 않는다. 무슨 말을 하던, 본인이 이미 괜찮다고 결론을 내리고 듣지를 않는데 대화는 무슨 놈의 대화.
“지금 두 사람, 나한테 아직 아이 이름도 안 알려준 거 알아요? 아이한테 내 소개는?”
한숨 쉬는 동생을 보며 언니는 잊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다.”
“처제, 요 귀여운 애가 우리 딸 신록. 신록아, 이쪽이 엄마 동생인 이모란다. 처제, 얘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너무 신경 쓰진 말고.”
얼핏 봐도 예닐곱 살은 되어 보이는 아이가 말을 잘 못하는데 신경을 쓰지 말라고? 기가 찬 얼굴로 이선은 언니를 보았다.
“신록이, 몇 살이에요 언니?”
“얘? 자기야, 딸 몇 살이었지?”
“왜 우리 진청시티로 훈련 갔을 때 태어났으니까 한 8년 됐나? 이야, 벌써 8년이나 됐네! 거기 사도 관장님, 잘 지내시려나. 같이 훈련하기 딱 좋았는데!”
글러먹은 부부의 대화를 보며 이선은 마른세수를 하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언니 부부를 보며 비록 며칠이지만 신록을 돌보는 동안 단단히 결심한 것을 터트렸다.
“애, 내가 알로라로 데려갈게요.”
“뭐? 얘 좀 봐, 네가 키우겠다고? 애 키우는 게 쉬운 줄 아니? 물론 우리 신록이가 착해서 그렇게 울지도 않고 화장실도 혼자서 잘 가지만—.”
어리둥절한 언니의 모습에 이선은 흘깃 시무룩한 인상의 아이에게 시선을 주고, 언니 부부를 끌고 집을 나섰다.
“언니나 형부나, 굉장히 무책임한 거 알아요? 언니가 가망없는건 알고 있었지만 형부까지. 제가 여기 왔을 때, 애 혼자 앓고 있었어요. 이 집에서 딱구리를 제외하면 혼자. 이 큰 집에서 혼자 앓고 있었다고요. 그리고 저 애를 누가 여덟 살이라고 보겠어요? 이름도 말하지 못하는 애를.”
여덟 살짜리 아이가 제대로 된 단어도 구사하지 못하고 체구보다도 작다. 워낙 훈련과 배틀을 좋아해 주변을 못 보는 일이 많은 언니였지만 훈련을 위해서라도 식사와 휴식은 제대로 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아이에게 제대로 된 식사는커녕 훈련때 질리도록 달고 살던 식사대용식이나 먹여가며 키웠겠지. 저 나잇대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단 것 같은 과자들은 구경이나 해 봤을까.
“처제, 아무리 그래도 신록이를 처제가 데려가서 키운다니.”
“맞아 맞아, 나중에 네 혼삿길 막혔다고 엄마한테 혼나는 건 나란말야.”
“지금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 언니?”
기가 막힌 얼굴로 되묻자 당연한 거 아니야—? 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 사람과 대화를 하려 한 내가 머저리지. 짧게 욕설을 내뱉고 이선은 탐탁치 않아하는 눈치의 형부와 그새 지나가는 야생 포켓몬에게 정신이 팔린 언니를 향해 단단히 못 박았다.
“사흘 뒤에 저 알로라로 돌아가요. 그때 신록도 데려갈게요. 보육교사는 아니니까 실수도 하겠지만 아이 혼자 두는 것 보다는 괜찮겠죠. 형부와 언니도 집 걱정 하지 않고 훈련에 집중할 수 있고, 아이가 보고 싶으면 만나러 오면 되잖아요? 지금 집에 오는 것처럼.”
저 훈련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훈련에 집중할 수 있다는 소리에 그새 얼굴 표정이 달라지는 게 눈에 보여 이선은 진심으로 질린 표정을 지었다.
“너라면 우리도 안심할 수는 있겠지만—, 정말 괜찮겠어? 물론 화장실도 혼자 잘 가고 혼자서도 잘 노는 애지만.”
이미 마음은 아이를 보내는 쪽으로 기울어버린 언니의 말에 이선은 등을 곧게 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까부터 지적하고 싶었는데 왜 혼자서 화장실 잘 가는걸 그렇게 대견하다는 듯이 말하는 거예요? 애는 포켓몬이 아니에요. 밥 주고 화장실 치워주면 되는 생물이 아니라. 진짜 언니 머릿속에는 훈련이랑 포켓몬 밖에 없어요? 전부터 말했죠? 사람이면 제발 사람답게 생각 하고 살라고. 언니가 언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것 까지는 말리지 않아요. 아니 안 말려. 언니 인생 언니가 알아서 말아먹든 부숴먹든 갈아먹든 하라고요. 하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 할 거 아니에요. 애는 무슨 죄야? 언니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지금 저게 무슨 꼴이냐고요. 최소한 엄마 흉내라도 내요. 어릴 때 엄마가 언니한테 해준 대로 흉내라도 내!”
“얘 좀 봐?”
설교에 익숙한지 숨 한번 몰아쉬지 않던 이선이 결국 욱했는지 소리를 지르자 어쩐지 재미있다는 듯이 웃은 언니는 당당한 얼굴로 대답했다.
“엄마가 나한테 해준 걸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너도 알면서 그런다.”
“언니, 여섯 살 때 망나뇽이 배우는 모든 기술 외워서 할머님께 경사 났다고 얘기 들은 사람이잖아요. 제발 그 좋은 머리 훈련 말고 다른데 좀 쓰라고요…….”
더 이상의 대화에 질린 이선이 먼저 집으로 들어가자 곧이어 언니 부부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선이 신록을 데리고 떠나기까지의 사흘간, 가사와 신록에 대한 모든 것은 이선이 독점했다.
신록은 언니 부부의 탓이었는지 주변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아이였다. 엄마와 아빠 곁을 떠나 이모와 함께 다른 곳에 가서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아빠의 포켓몬이었던 딱구리를 두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울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어두운 방이나 구석에서 둥글게 몸을 말았다. 딱구리의 웅크리기처럼. 훌륭한 웅크리기라며 진짜 구를 수 있겠다고 즐거워하는 언니 부부와 달리 이선은 착잡했다.
아이는 울어야 했다. 울고,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삐지고 토라져서 심술을 부려야 했다. 저렇게 수긍하고 홀로 삭히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야 할 것이 많다. 이선은 알로라에 있는 집으로 육아에 관련된 서적과 교구를 주문하며 언니 부부에 대한 원망을 쌓았다.
그 작은 손을 잡고 알로라행 비행기에 탔을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알로라의 자유분방한 아이들 틈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밤에만 돌아다니곤 하던 아이였다.
부모와 떨어진 것에 대한 외로움이었는지, 아니면 함께 하던 딱구리와 떨어진 것에 대한 슬픔이었는지는 모르나 신록은 그녀의 할비롱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고 천천히 배우기 시작한 단어들로 할비롱을 할배라고 부르며 쫓아다녔다. 시무룩한 얼굴로 집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아이가, 알로라의 자연 속에서 웃기 시작한 모습을 보며 언니 부부에게서 데려온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며 속으로 안심할 때였다.
낮이 아닌 밤에 돌아다니던 신록에게 위험하다며 아무리 혼을 내도 듣지 않고 낮에 사귄 친구들과 어울리라며 내보내도 아이는 머뭇거릴 뿐 누군가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친구와 놀고 돌아온 날이면 할비롱의 곁에서 그렇게 웅크렸다.
신록은 누군가와 떨어지는 이별이 그렇게 외로웠던 모양이었다.
성장할수록 사람을 대하기보다는 혼자 있는걸 편해하는 아이의 모습에, 밤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에 그렇다면 차라리 천문대를 방문하는 게 어떨까 싶어 데려갔던 어느 날의 밤. 까만 밤하늘에 무수히 박힌 별과 쏟아져 내리는 유성우를 보며 굳어있던 아이는 그날 이후로 밤마다 천문대에 올랐다.
나시버스의 운전수도, 천문대의 멀레인을 비롯한 직원들도, 그 일대를 순찰하는 경찰들도 모두가 아이를 외우고 오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신록은 매일 밤 천문대에 올랐다. 처음에는 이선이 함께 했지만 언제부턴가 이모님은 낮의 생활이 있잖아요, 라며 할비롱과 둘만 가겠다 하던 신록. 다정하고 외로움이 많은 작디작은 조카.
알로라에 오고 몇 년째, 만나러 오지 않는 부모님에게 와달라며 조르지도 못하는 체념이 빠른 조카에게 선물할 첫 포켓몬은 어떤 아이로 해야 할까 이선은 꽤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록아, 너도 슬슬 네 포켓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니?”
“아직, 아직이요.”
좋아하는 타입이나 혹시 원하는 포켓몬이 있을까 물어본 그날,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고개를 젓던 모습에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천천히 하자. 준비가 되면 말해줄래?”
“네. 죄송해요, 이모님.”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미안한 것은 오히려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이쪽. 알로라의 딱구리와 신록의 기억속의 딱구리가 다른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그 머뭇거림을 떠올리고 이선은 신록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럼, 학교 가자.”
“네?”
“포켓몬은 아직 이더라도 학교는 가야지. 너 어제도 아침에 자서 밤에 일어났지? 친구를 사귀던 배우고 싶은 것을 찾던 천천히 해도 되니까 일단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연습 먼저 해야지.”
사람과 어울리는 연습. 입을 오물거리며 읊조려보는 조카를 향해 씩 웃으며 이선은 라이드기어를 건넸다.
“리자몽이란다. 학교는 멜레멜레 섬에 있으니까. 다른 녀석들 타고 다니는 것과 비슷할 거야.”
포켓몬들을 좋아하는 신록에게 있어서도 익숙한 이모님의 라이딩 포켓몬.
“빌려주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학교 가기 싫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대신 도전은 해볼 것.”
“네.”
신록을 위해 알아보고 있던 랄토스의 알은 알고 지내던 브리더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없던 일로 했다.
자신이 욕심을 부리는 것 보다 신록이 준비가 되는 것이 먼저였기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밤의 천문대에서 메테노를 주워오는 모습을 보며 괜찮아졌나 싶었지만, 역시 신록은 무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록아, 너는 너무 참아. 네가 괜찮지 않으면 괜찮은게 아니란다. 착한 아이로 있지 않아도 괜찮아.”
무엇이 또다시 아이를 외롭게 한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기에 신록의 등을 토닥여주던 그때, 불현 듯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록 언니—! 나 놀러왔어!”
활달한 목소리에 웅크리고 있던 신록이 흠칫했다.
“언—니—!”
고개를 든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과 반가움. 멈칫거리던 아이가 뛰어내리듯이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나선다. 한발 늦게 따라 나선 이선의 시야에 누리공과 함께 선 활달한 인상의 소녀와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메테노가 들어왔다. 방에 없던 메테노가 혼자 어디로 놀러갔나 했더니, 신록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친구를 데리러 갔던 모양이었다.
“카이나니? 여긴 어떻게.”
“바다에서 카훌라하고 놀고 있었는데 메테가 놀러왔던데? 그래서 놀러!”
천진난만하게 웃어보이며 손을 들어보인 소녀는 뒤늦게 이선을 보고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 록아, 친구니?”
“학교 친구예요. 합숙때도 같이 있었는데. 카이나니, 이쪽은 저희 이모님이세요.”
신록의 소개에 활달하게 웃으며 인사하곤 카이나니는 신록의 팔을 잡아 끌었다.
“언니, 나가자!”
“나가자니, 어디로?”
“말리에 정원! 나 거기 구경 가고 싶어!”
끌려가다시피 집을 나가며 이선과 시선이 마주친 신록은 잠시 머뭇대고는 이내 웃어보였다.
“다녀올게요.”
“다녀오렴.”
신록을 쫓아 달려나가는 가디의 입에 신록의 맥고모자를 씌워 딸려보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작은 조카는 어느새 그녀를 보기 위해 놀러오는 친구와 그녀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친구를 갖게 되었다.
“조금은 덜 외롭게 되었을까?”
더 이상 어두운 방에서 홀로 웅크리지 않기를 바라며 이선은 멀어져가는 조카와 조카의 친구를 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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