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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몰아치는 은빛산 본문
"히비키랑 그린이 레드를 만나기 위해 티격태격하면서 같이 시로가네 산에 오르고, 결국 포켓몬 배틀까지 번지다가 둘이 조난당하는 이야기"
예니레 님의 리퀘스트입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은빛산의 한 동굴에서 그린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일이 왜 이지경이 된거지, 그린은 동굴 한쪽에서 피츄와 노닥거리고 있는 골드를 흘깃 노려보고 이내 한숨을 내 쉬었다.
사실 중요한 일 같은건 없었다. 리그가 개최되기 직전의 체육관은 한산한 편이었고 시끄러운 여자로부터 오박사님께서 부탁하신 배달물이라며 웬 상자를 떠넘겨받았으며 옐로로부터 레드 형이 산에서 안내려와요-라는 말을 들은 관계로 친구가 산에서 얼어죽지나 않았나, 가벼운 마음으로 할아버지의 소포를 들고 은빛산 출입구로 향했었다.
"어, 그린 형!"
은빛산 특유의 위험성 때문에 따로 사람을 두어 관리를 하는 출입 관리소 앞에서 당구 큣대를 든 소년이 겉멋이 잔뜩 든 자세로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린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같은 성도의 도감 소유자인 크리스탈과 실버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철없는 말썽쟁이가 오늘은 또 왜 여기에 있는건지.
성의없이 대꾸하며 지나친 그린이 출입 관리소의 창문을 툭툭 건드리자 직원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온다. 사실 출입 관리소에 허가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지만 절차는 절차라며 늘 들렀다 가는 그린을 은빛산 출입 관리소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린 형! 지금 레드 형 만나러 가시는거죠?"
옆에 달라붙어 걷는 골드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그린의 옆구리를 찌르려 하자 그린은 불쾌한 얼굴로 슬쩍 골드를 피했고 무안한 얼굴을 한 골드가 입을 비죽이더니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저, 지난번에 일이 있어서 내려왔었거든요. 다시 올라가려던 참인데, 그린 형을 만나다니 운이 좋았네요."
"나를? 어째서?"
몇번이고 올랐던 은빛산이지만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린이 그제서야 돌아보자 골드가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씩 웃어보였다.
"그야 그린 형은 레드 형이랑 맞먹는 굉장히 강한 트레이너잖아요? 얘기 해 보고 싶었다구요."
"발밑이나 제대로 보고 걸어."
어쩐지 퉁명스러운 그린의 대답에 골드가 입을 비죽 내밀다가 돌을 잘못 밟고 비틀거리자 그린이 한숨을 내쉬며 팔을 잡아당겼다.
"은빛산 초행길도 아닌데 제대로 안걸을래?"
"이번건 실수죠! 처음 가는것도 아닌데 그렇게 긴장 할 필요 없잖아요? 편하게 갑시다, 편하게."
히죽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걷던 골드가 튀어나온 나뭇가지에 볼이 긁히는걸 본 그린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레드도 상당히 무신경하고 둔한 부분이 있었지만 저 애는 한술 더 뜬다. 작은 일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둥글게 둥글게.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낙천주의.
"오, 뿔카노!"
뿔카노를 맞아 몬스터볼을 꺼내는 골드의 모습에 그린은 한발 뒤에서 팔짱을 꼈다. 레드를 붙잡고 훈련이랍시고 은빛산에 틀어박힌지 몇개월이 흘렀으니 어느정도 실력도 붙었을 터. 이 기회에 봐두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뿔카노는 땅/바위 타입. 유리한것으로 치자면 역시 물 타입인 왕구리나 풀타입인 해루미 정도.
"해루미!"
골드가 해루미를 꺼내 뿔카노를 노려보았다. 평소의 장난기는 온데간데 없고 신중히 상대를 살피는 모습에 내심 그린이 놀랄때 골드가 해루미에게 명령을 내렸다.
"잎날 가르기!"
과하게 필요없는 제스처를 섞어가며 해루미가 무수한 잎사귀를 날린다. 상처입은 뿔카노가 도망치자 해루미와 손바닥을 마주치고 볼로 불러들인 골드가 기세등등한 얼굴로 그린을 돌아보았다.
"어땠어요?"
"공격에 쓸데없는 동작이 왜 그렇게 많아?"
당연히 칭찬이 나올거라고 생각했는지 골드가 동그란 눈으로 그린을 바라보았다.
생판 남이라면 관심도 안가졌겠지만 골드는 그의 후배다. 도감 소유자라는 항목으로 엮이는 만큼 도감을 준 할아버지에게 누를 끼치는것은 보기 싫은 그린은 한숨을 내 쉬었다.
"레드에게 대체 뭘 배운거야?"
"배틀에서 스피드만 중요한건 아니잖아요!"
"쓸데없는 동작이 많으면서 그렇다고 급소를 노리는것도 아니잖아 넌."
그린의 핀잔에 앞서 걸어가던 골드가 삐딱한 자세로 입을 비죽였다. 그래봤자 레드 형에게 졌으면서.
"꼭 빨리 끝내야 해요? 급소를 노리고 스피드만 빠르면 대수인가."
"배틀 시간이 적게 걸릴수록 포켓몬들의 부담이 적다는거 몰라?"
"흥, 이기면 됐잖아요! 얘들이나 나나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은 똑같다구요!"
자유분방하더라도 포켓몬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같을것이다. 레드가 가르친다고 끼고 있으니 어느정도는 하겠지만, 저 태도 만큼은 고쳐놓아야겠지.
"호오…, 네가 그렇게 강해? 급소를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물론이죠! 레드 형 밑에서 얼마나 훈련했는데요!"
함정에 빠진 것도 모르고. 그린은 속으로 웃어보였다.
"못믿겠으면 배틀 해요!"
에이스인 블레이범을 꺼내들고 당당하게 외치는 골드의 모습에 그린은 진한 비웃음을 띄었다.
"너, 내가 땅 타입 전문 체육관 관장이라는건 아냐?"
"우리 폭돌이가 얼마나 강한데요! 말로만 그러지 말고 포켓몬 꺼내시라구요!"
원한다면, 코뿌리가 든 몬스터볼을 쥐고 그린은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배틀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그린의 코뿌리가 구멍파기를 사용해가며 골드의 블레이범을 농락하고, 교체되어 나온 왕구리마저 기절 시켰으니까. 문제가 있었다면 그들이 서 있던 땅이 다른 지대에 비해 물렀다는 점이었다. 아까 전 뿔카노가 지진을 일으켰던 땅에 그린의 코뿌리가 구멍파기를, 그리고 왕구리가 내뿜은 물대포가 안그래도 물렀던 지반을 더 약화시켰고, 결국 그들이 딛고 서 있던 땅이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은빛산의 변덕이 시작되어 눈보라가 몰아치자 급히 근처의 동굴로 대피한게 지금.
어떻게든 될거라며 태평하게 피츄와 놀고있는 골드와 달리 그린은 잠시 레드를 살펴보러 왔던거였고 무엇보다 블루, 그 시끄러운 여자가 이번 일을 알게되면 또 얼마나 놀려댈지.
반쯤 신경질적으로 포켓기어를 조작해도 레드는 연락이 닿지 않고, 눈보라 탓인지 신호 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결국 눈이 그치기를 기다려야 하나, 한숨을 내 쉬던 그린의 눈 앞에 노란 무언가가 나타났다.
"피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건 피카츄. 고개를 갸웃이던 피카츄가 쪼르르 그린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피카츄-."
동굴의 안쪽에서 피카츄를 부르며 레드가 나오고 입구 언저리에 각자 편하게 앉아있던 그린과 골드를 발견한 레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레, 너네 여기서 뭐하냐?"
"그러는 너는 여기 웬일인데?"
그린의 물음에 피카츄가 주인에게 뛰어 안기고 레드는 피카츄의 등을 쓰다듬으며 씩 웃어보였다.
"가끔 날씨가 안좋으면 조난자가 생기거든. 그럴때면 피카츄가 조난자 찾아다녀서."
대답하던 레드가 어딘가 경직된 골드와 어색한 그린을 보고는 이내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뭐야, 오늘의 조난자는 너희였냐?"
+예니레 언니의 리퀘스트였습니다.
생각했던 만큼 나오지도 못해서 언니 많이 미안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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