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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홍빛나] 죄인과 기다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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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홍빛나] 죄인과 기다림

Pialati 2016. 8. 22. 00:00


낮인지 밤인지 분간 할 수 없는 공간에 남겨져 있다는건 어떻게 보면 꽤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직각으로 꺾인 구조물, 허공에 둥둥 떠있는 디딤돌. 중간중간 소용돌이가 생겼다 사라지는 위험한 곳에서 태홍은 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반전 세계는 현실 세계의 그림자. 다른말로 하면 현실에서 어긋난 세계. 이곳에서는 세상의 상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았다. 원하는 방향을 보고 걷는다고 해서,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허공에 떠있는 디딤돌을 표식으로 삼아 걸어도 풍경은 변하지 않는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만큼 그의 신체 변화도 적다.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가 행동량에 비해 적다. 이동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체력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행동을 줄였다. 움직임을 줄이고 가능한 체력의 소모를 아껴야 했다. 이곳의 감시자는, 감시를 할 뿐이지, 생존에 필요한 무언가를 조달해 줄 만큼 친절하지 않으니까. 

 

“키에에에에엑!” 

 

기라티나가 울부짖으며 지나간다. 이곳에 격리된 그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지켜보는 감시자.

붉은 사슬로 디아루가와 펄기아를 멋대로 조종하려 한 그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이 반전세계의 왕은 그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존재를 드러냈다.

이동을 시도할때는 기라티나가 근처에서 배회했지만 이제는 간간히 그의 생존을 확인하러 오는 정도에 그쳤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움직임 없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감각에, 이미 미쳐있을지도 모르는 현실에 태홍은 정말 오랜만에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다.

자신이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천관산의 꼭대기에서 자신을 막아섰던 어린 소녀가 자꾸 생각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조무래기들을 막아서며 일을 방해하고 있는 소녀에 대한 보고를 들었을때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언제나 정의감 넘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고 조무래기들은 약했으니까.

처음 그 훼방꾼에 대해 생각을 바꾼 것은 간부인 새턴과 주피터, 마스가 그 소녀에게 패배했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였다. 태홍 그보다는 못하지만 간부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을 가지고 있던 그들을 꺾었다는 것은 조무래기를 꺾은것과는 다른 의미. 평범한 훼방꾼이 아님을 자각했을때는 이미 계획을 본래대로 이루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세 개의 호수에 전해지는 전설의 포켓몬들을 나타나게 하기 위한 폭탄을 만들어내려 했을때도, 그 폭탄을 사용해 호수를 폭파했을때도, 호수의 포켓몬 세 마리를 포획해 붉은 사슬을 만들어내려 했을때도 소녀는 한결같이 그의 앞을 막아서 왔다.


새벽녘의 하늘을 닮은 그 짙은 푸른 눈으로 흔들림 없이 올곧게 바라보던 시선을 기억한다.

 디아루가와 펄기아를 이용해 세계를 재창조하겠다는 그의 앞을 매번 가로막던 작디 작은 소녀.

신오의 챔피언과, 배틀 프런티어의 타이쿤을 아버지로 둔 소년과 함께 그를 막아서던 소녀는 어처구니 없게도 그에게 좋아한다며 고백을 해 왔다.

분명 적임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 올곧은 눈으로 좋아한다며 고백해오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 갤럭시단 아지트에 있던 호수의 포켓몬 세 마리를 풀어주고 디아루가와 펄기아를 붉은 사슬에서 해방시켰다.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그의 일을 방해하던 소녀.

 

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빛나며 당당하게 그 마음을 부딪혀 왔다.

그가 하는 일은 잘못된것이라며 마지막까지도 그를 막아서던 소녀를 생각하던 태홍의 시야에 그 앞을 유유히 지나가는 기라티나가 보인다. 생존에 필요한것을 수급받지 못한 몸이 점차 생명력을 잃어간다.

천하의 이 태홍이, 갤럭시단의 보스였던 그가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이할 줄은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을것이다.

 

그의 마지막을 알아챈듯 지나갔던 기라티나가 되돌아온다.

정면에 선 기라티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태홍은 마지막까지 좋아한다고 말하며 기다리겠노라 선언하던 소녀를 떠올렸다. 이곳에서 그의 끝을 마주보는것은 감시자인 기라티나.

이 반물질 세계의 왕이자 폭군인 그가 그의 죽음을 누군가에게 알려줄정도로 친절할것 같지는 않다. 시간의 흐름이 없는 이곳에서, 끝을 본 자신은 덩그러니 이곳에 남아있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 소녀는, 아무것도 모른채 언제까지고 그를 기다리게 될것이다.

올곧게 바라보던 그날의 짙은 푸른색 눈을 떠올리며 태홍은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하얀 눈이 흩날리는 선단 시티.

언제나처럼 신전의 앞에 와 선 빛나는 양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정의를 갖고 노력했던 사람. 단 한사람이라도 곁에서 그에게 다른 길이 있다는것을 알려주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지 않았을까.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걸어온 사람.

조금이라도 빨리 그를 만났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세상에 나와 함께 할 수 있었더라면.

오늘도 빛나는 굳게 닫힌 신전의 앞에서 기도했다. 차가운 눈이 그녀의 어꺠와 머리위에 소복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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