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s Library
[다이유우] 유우키의 죄 본문
트위터 @stone_10good 님과의 연성 교환으로 인한 글 입니다.
현대 AU
여느때와 다름없는 금요일 오후 방과후. 주번이라며 허둥거리는 이웃집 소꿉친구 하루카를 보며 가방을 챙기던 유우키는 도와줄까, 물었고 언제나 그렇듯이 다부진 하루카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토요일인 내일은 쉬는 날이기에 무엇을 할지 떠들며 다른 친구들이 하나 둘 짝을 지어 교실을 나가고 의자를 뒤로 기울이며 장난을 치는 유우키의 모습에 대걸레로 교실 청소를 마무리짓던 하루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유우키, 할 일 없으면 집에나 가."
"혼자 가면 심심하다고."
"하아?"
한손에는 대걸레의 자루를 쥐고, 다른 한손을 허리에 가져다 댄 하루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유우키를 바라보았다. 격투기 체육관을 하는 센리 아저씨가 훈련을 하자고 하면 투덜대면서도 자신을 버리고 냉큼 달려가버렸던 장본인이 지금 혼자 집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방과후 교실에서 저러고 있다는게 말도 안된다.
"유우키, 너 무슨 일 있지?"
"아니? 왜?"
왜냐고 묻는 네 눈이 이미 딴곳으로 간거 보면 무슨 일 있는거 맞거든? 크게 한숨을 내 쉰 하루카는 대걸레 자루를 교탁에 기대어 세워놓고 성큼성큼 유우키에게 다가갔다.
이미 다 챙겨놓은 유우키의 가방을 낚아채고 의자를 흔들며 놀고있는 유우키의 목덜미를 잡아채 그대로 교실 밖으로 끌고 나온 그녀는 유우키의 품에 가방을 안겨준뒤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센리 아저씨랑 싸운거면 가서 잘못했다 빌고 시간 남아 돌면 아줌마나 좀 도와드려. 청소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쾅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을 닫고 들어가 다시 대걸레 자루를 잡는 하루카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며 유우키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상담받고싶은게 있어서 기다리던건데. 이미 쫓겨난 이상 계속 기다려봤자 하루카는 말을 듣기 전에 화부터 낼것이다.
앓는 소리를 내며 가방을 둘러 멘 유우키는 터덜터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하루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비밀이 한가지 있었다.
호연의 권위있는 금융학자이면서 거대 기업 데본의 후계자로 알려진 츠와부키 다이고. 유명한 스톤 콜렉터로도 알려진 그는 바로 얼마 전까지 유우키, 자신의 소중한 연인이었다.
사귄 2년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행복했었다. 며칠씩 함께 밤을 보내기도 하고 그저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함께 있는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유우키가 기억하는 다이고는 언제나 자신의 말에 귀을 기울여주고, 언제나 다정하고, 언제나 멋진 미소를 띄고 있던 사람. 그러나 이따금씩 연락도 없이 며칠씩이나 사라져버리고, 겨우 돌아와 하는 말이 미안하다는 사과 뿐인 모습.
그리고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들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던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워 지난 주 마지막 데이트때 충동적으로 이별을 고했다.
어쩌면 갑작스러웠을 이별 선언에도 다이고는 그랬느냐고, 이후로도 다치지 말고 건강히 잘 지내라 하고는 언제나처럼 떠나갔다.
좋아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은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금만 더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떠나가 버린 이후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때때로 나 혼자 좋아했던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른인 그와 달리 자신은 아직 어린 학생이기에, 자신의 철없는 모습에 질려버렸던건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래서 하루카에게 친구 이야기라며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했었는데.
힘없이 걸어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유우키는 정문 앞에 서있는 검은 자동차 곁을 지나가면서도 한숨을 내 쉴뿐 아무런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자동차의 창문이 내려가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유우키 군?"
익숙한 목소리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힘없이 처져있던 유우키의 고개에 힘이 들어갔다.
짙게 선팅이 되어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 자동차의 창문이 반정도 내려가 있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건 몇년째 TV와 라디오, 잡지 등에서 빈번하게 모습을 볼 수 있는 톱 연예인. 하얀 베레모를 얹듯이 쓰고 손을 흔들며 웃어보이는 미쿠리를 발견한 유우키의 머릿속이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미, 미, 미, 미쿠리 씨!?"
"쉿. 이목을 끌면 곤란하니까 일단 탈래?"
차 문이 열리고 그제서야 미쿠리가 여기에 있다는것을 알면 사람들이 모여들것이라는점에 생각이 미친 유우키는 엉겁결에 자동차에 올라 탔고, 탁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문이 닫힌 자동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어, 어…!"
당황하는 유우키의 옆에서 다리를 꼬고 턱을 괸 미쿠리가 씩 웃어보였다.
"걱정할거 없어. 때가 되면 제대로 내려줄테니까."
흰 셔츠에 연한 옥빛의 베스트. 흰색의 바지를 입은 다리를 꼰채 살짝 윙크를 하는 미쿠리의 턱을 괸 손목에 걸린 두개의 얇은 금색 뱅글이 찰랑였다.
"저… 아까, 제 이름을 부르셨는데요."
"아, 맞아. 미안해, 불러놓고 제대로 설명도 안해줘서. 일단 자기소개가 먼저겠지?"
수수하게 차려입어도 더할나위없이 화려한 미쿠리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유우키를 응시했다.
"초면이지? 유우키 군. 네 이름은 다이고로부터 들었어."
"다이고 씨요…?"
어리둥절한 유우키의 반응에 미쿠리는 작게 혀를 차더니 이내 다시 웃는 얼굴로 손을 뻗었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유우키의 턱 선을 따라 훑는다. 지금 이 상황이 더할나위없이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유우키지만 다이고의 이름이 나온 이상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물론 이 차를 탔을때부터 그의 선택지는 사라져버린 셈이었지만.
"그녀석과는 어릴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거든. 그렇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니 놀라운걸. 나에게는 매일같이 네 이야기만 했는데. 물론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경계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만뒀지만."
다이고의 친구가 미쿠리라는것도 놀랍지만 다이고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것이 더욱 놀랍다. 유우키가 기억하는 다이고는, 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러나 유우키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반대쪽 방향으로 다리를 바꿔 꼬고 미쿠리는 손끝으로 유우키의 턱을 짚어 고개를 들게 했다.
"아무리봐도 평범한 소년일뿐인데, 네 무엇이 그렇게 다이고가 빠지게 한걸까? 역시 귀여운 그 얼굴?"
"그게 무슨……."
"웬만한 여자들이 접근해도 관심조차 없던 녀석이, 아파서 정신을 잃을때까지도 네가 걱정할거라고 연락조차 못하게 하던데 그게 빠진게 아니면 뭘까?"
어렵게 입을 연 유우키의 말을 자르고 빠른 속도로 말을 내뱉는 미쿠리의 모습에 유우키는 오싹해졌다.
생글생글 예쁘게 웃고 있지만 지금 저 사람은 화를 내고 있는것이다.
"잠깐만요, 다이고 씨가 아프다구요?"
방금전 빠른 속도로 지나가버린 미쿠리의 말에서 걸리는 무언가를 감지해낸 유우키가 놀라 묻자, 미쿠리는 몸을 뒤로 젖혀 카 시트에 기대고 팔짱을 끼며 어딘지 내려보는듯한 눈초리로 유우키를 바라보았다.
"다이고는 잔병치레같은건 잘 없는 편인데 한번씩 아프면 크게 앓거든. 너와 사귀는 중에도 몇번정도 아팠는데, 걱정 끼치기 싫어서 말 안했을걸? 물론 지금 아픈 정도에 비하면 약하지만."
"지금도, 아파요?"
걱정어린 유우키의 얼굴에 다이고를 괴롭힌 만큼 괴롭히겠다고 다짐했던 미쿠리 마음속의 가시가 뭉툭해졌다. 말 잘못하면 나중에 다이고한테 맞는거 아닌가, 어차피 얘 데려가면 혼날거같은데. 마음속으로 갈등하던 미쿠리는 이내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열이 심해서 정신도 못차리고 있어. 며칠 된 모양인데 언제부터 아팠는지도 말 안해주고. 주치의 말로는 안그래도 무리하던것에 뭔가 큰 쇼크를……."
미쿠리의 말을 들으며 점차 하얗게 질려가는 유우키의 얼굴을 보며 역시 다이고가 아픈 이유는 이 아이구나 싶은 미쿠리는 한숨을 내 쉬었다.
"저기, 유우키 군."
"…네?"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하얗게 질린 소년을 보며 미쿠리는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를 떠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송장 하나 치우겠거니 싶어 저지른 일이지만 설마 이런 말까지 하게 될줄은 몰랐다.
"다이고가 많이 답답한 타입이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부족한게 보이더라도 이해해 줘. 요령이 부족해서 변명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니까."
잘못한건 잘못한거니까 변명은 하지 않는댔던가, 미쿠리의 중얼거림에 유우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이유였어요? 말없이 사라지고 연락이 되지 않던 것도,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만 했던것도. 그토록 혼자 아팠으면서도 그저 연락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다니. 왜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있게 했어요.
달리던 자동차가 멈춰서고, 유우키 쪽의 문이 열리자 미쿠리는 하얗게 질린 유우키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가 봐."
튕기듯이 뛰쳐나간 유우키가 펜트하우스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미쿠리는 한숨을 내 쉬었다.
한편, 펜트하우스 내의 엘리베이터에 탄 유우키는 떨리는 마음으로 지문인식기와, 그 위에 붙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때 다이고의 권유로 등록을 하면서도 함께 있을건데 굳이 등록을 해야 하냐 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불안한 손길로 지문인식기에 손 끝을 가져다 대자 익숙한 인장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늘 다이고가 착용하고 다니던 라펠핀. 아직 다이고에게 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주저앉은 유우키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몇번이고 밟았던 푹신한 카펫에 내려선 유우키는 이내 한번도 수수로 열어본적 없는 문 앞에서 멈춰섰다.
숫자와 지문을 조합해야만 열리는 문. 늘 다이고가 열어주었기에 스스로 열어볼 필요도 없던 문이지만 이 문만 열면 다이고가 있다.
지문이야 엘리베이터와 동일한 시스템이니 등록되어 있을테지만 숫자는 무엇일까.
한참 고민을 하던 유우키는 틀리면 어쩌지, 망설이면서도 몇가지 숫자를 누르고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철컥, 잠김이 풀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뛰쳐들어간 유우키는 전면의 벽이 유리로 되어 노을이 그대로 집안에 비치는 그 붉은빛이 너무나도 불길하게 느껴져 서둘러 침실로 달려가자 흰 시트에 폭 싸여 잠들어있는 다이고가 있었다.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에 흠칫해 고개를 숙여 심장 소리를 들어보고, 코 밑에 손을 가져가 숨을 쉬고 있다는것을 확인한 뒤에야 유우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아직도 뜨거운 열을 내리기 위해 미지근한 물을 담아와 수건에 적셔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땀에 젖은 셔츠를 벗기기 위해 단추를 풀면서도 이건 간호를 위한거라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드러난 앙상한 몸을 보며 유우키는 울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열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닦아내면서 발견한 팔의 상처에 또다시 트라우마가 생긴걸까 걱정하면서도 속상한것은 어쩔도리가 없었다.
그날 밤, 언제나 긴소매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한 양 팔에 새겨진 오래된 흉터들을 보며 속상해하는 자신을 보며 앞으로는 절대 이 몸에 상처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 했었는데, 다이고 씨는 그날의 약속을 기억이나 할런지.
이제 다이고 씨는 자신의 것이니 허락 없이 상처내면 화낼거라고 그날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먼저 이별을 고한것도 자신이고 그를 저버린것도 자신이지만 그만큼 새로 새겨진 저 상처가 더욱 아파보였다.
"다이고 씨, 제발 부탁이니까 일어나요……."
이렇게 누워있지 말아요.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않을게요. 말없이 사라져도 돌아와주기만 하면 돼요. 욕심부리지 않을게요. 제발, 제발 일어나요. 일어나서 날 봐줘요. 언제나처럼 유우키라고, 이름을 불러줘요.
힘없이 늘어져있던 다이고의 한 손을 붙잡아 단단히 손가락을 얽고 상처투성이의 팔을 어루만지던 유우키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지근했던 물이 차가워지고 이 물로 몸을 닦았다가는 감기에 걸릴거라 생각된 유우키가 물을 갈러 가기 위해 일어나려고 얽힌 손을 풀려고 하자 작은 신음소리가 들여왔다.
강하게 쥐인 손을 풀어내려 해서 인가 싶어 더욱 조심스레 얽힌 손가락 하나하나를 풀어내자 힘이 빠진줄 알았던 다이고의 손이 다시한번 단단히 유우키의 손가락에 얽혔다.
"…우키……."
작은 소리였다. 신음소리보다도 미약한 작은 목소리에 놀란 유우키가 고개를 들고 다이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이고 씨? 다이고 씨?"
파르르 떨리는 가느다란 속눈썹에 아쿠아마린을 닮은 그 푸른 눈을 보여주지 않을까, 단단히 손가락을 얽은 손을 모아쥐고 유우키는 다이고를 불러보았지만 아직 때가 일렀는지, 다이고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지마, 가…지마…유우…키……."
이름조차 힘겹게 부르면서 가지말라 말하는 다이고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에 유우키는 입술 안쪽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렇게까지 힘들어할줄 몰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기에 괜찮은줄 알았다. 이 사람이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 하는게 자신탓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것에 유우키는 그대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입술 안쪽이 터졌는지 비릿한 맛이 났지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이 이 사람에게 준 고통을 생각하면.
"다이고 씨. 저 여기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계속 여기 있을게요."
그러니 이제 아파하지 말아요.
기도하듯이 다이고의 손을 모아쥐고 무릎을 꿇은 유우키는 지금까지 한번도 바라지 않았던 신에게 처음으로 기도했다. 다이고의 무사를. 쾌유를. 이 사람의 행복을.
무거운 눈꺼풀을 힘들게 밀어 올린 다이고는 묘한 갑갑함에 손을 보았다. 있을리가 없는 유우키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머리를 가져다 댄 채 잠들어 있는 모습에 아직 잠이 덜깼나 싶었던 다이고가 다른손을 들어 유우키의 머리를 쓰다듬어보았다. 손에 익은 보드라움. 진짜다. 이건 진짜 유우키다.
지난날 이별을 고하는 모습에 보고있기 힘들어 두고왔던 유우키가, 지금 그의 방에서 그의 손을 잡은채 잠들어 있었다.
"으으……."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묘한 소리를 내는 유우키의 어깨를 톡톡 건드려보니 잠들어있던 유우키의 푸른 눈이 반짝 떠졌다.
처음에는 멍하니, 그리고 점차 동그래지고 커지던 눈동자가 이내 두어번 깜박이더니 와락 유우키가 다이고의 품에 안겨들었다.
"다이고 씨!"
영문도 모른채 갑자기 품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한 유우키의 등을 토닥이던 다이고는 벽에 걸린 시계가 가리키는 날짜와 시간을 보고, 자신의 셔츠가 벗겨져 있다는것과 침대 옆 사이드테이블에 놓인 물그릇과 수건을 보고 이내 상황을 알았는지 난감한 얼굴로 유우키의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우키? 나는, 괜찮으니까."
오래 앓은 탓인지 목이 잠겨 쉰소리가 났지만 개의치않고 유우키를 달래려 하자 아예 올라타 부둥켜 안는 모습에 다이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원래 애교가 없는편은 아니었지만 이정도로 먼저 다가오지는 않던 아이였다.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새침하게 굴기도 하던 아이가 오늘따라 떨어지기 싫어하는 모습에 다이고는 그저 등을 살살 쓸어주며 달래볼 뿐이었다.
"미안해요."
응?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등을 토닥이며 어떻게 아이를 달랠까 고심하던 다이고가 뒤늦게 웅얼거리는 유우키의 목소리를 이해했다.
"미안해요 다이고 씨. 정말 미안해요.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려서……."
"흐응… 무슨 욕심을 부렸을까?"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이는 목소리에 유우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허둥지둥 품을 벗어나려 하지만 스스로가 먼저 안겨들었던데다가 등 뒤로 팔을 교차시킨 다이고가 힘을 주어 끌어안고 있었기에 유우키는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벗어나지 못했다. 힘을 주어 억지로 벗어나려 한다면, 조금전까지 아파했던 다이고에게서 벗어날수 있었겠지만 어째서인지 강하게 나갈수가 없었기에 유우키는 그냥 다이고의 품에 얼굴을 묻는것을 선택했다.
"응? 유우키. 무슨 욕심을 부렸는지 말 안해줄거야?"
귓바퀴를 살짝 깨물며 물어오는 다이고의 낮은 목소리에 울상을 지은 유우키가 웅얼웅얼 입을 열었다.
"다이고 씨가… 연락이 안되면 걱정되는데 이유도 말 안해주시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막 웃어주시고 하시니까……."
"내가 유우키를 소중히하지 않는것 같았어?"
웅얼대던 목소리가 그치고 귀까지 빨갛게 물든 유우키가 몸을 움츠리자 다이고는 후후, 작게 웃더니 부끄러워하는 소년의 어깨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살짝 깨물어 자국을 남겼다.
"내가 이런걸 하는 사람은 유우키밖에 없는데."
"으…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아직 토요일 아침이니까 시간은 많아."
쪽, 쪽, 가볍게 이마며 코, 볼, 목, 어깨에 사정없이 버드키스를 쏟아붓는 다이고의 모습에 울상을 지은 유우키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다이고 씨, 아침부터 이건 아니잖아요!!!'
+여담이지만, 다이고 집 비밀번호는 유우키 생일이었습니다!
쓰고나니 이거 왜이리 짧니…
유우키 집에 말 안하고 외박했는데 전화도 걸려오지 않던 이유는 하루카가 둘러대서(…) 하루카는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거든요! 우리 하루카가 얼마나 다부지고 똑소리나는 앤데!!
현대 AU
여느때와 다름없는 금요일 오후 방과후. 주번이라며 허둥거리는 이웃집 소꿉친구 하루카를 보며 가방을 챙기던 유우키는 도와줄까, 물었고 언제나 그렇듯이 다부진 하루카는 괜찮다며 거절했다.
토요일인 내일은 쉬는 날이기에 무엇을 할지 떠들며 다른 친구들이 하나 둘 짝을 지어 교실을 나가고 의자를 뒤로 기울이며 장난을 치는 유우키의 모습에 대걸레로 교실 청소를 마무리짓던 하루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유우키, 할 일 없으면 집에나 가."
"혼자 가면 심심하다고."
"하아?"
한손에는 대걸레의 자루를 쥐고, 다른 한손을 허리에 가져다 댄 하루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유우키를 바라보았다. 격투기 체육관을 하는 센리 아저씨가 훈련을 하자고 하면 투덜대면서도 자신을 버리고 냉큼 달려가버렸던 장본인이 지금 혼자 집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방과후 교실에서 저러고 있다는게 말도 안된다.
"유우키, 너 무슨 일 있지?"
"아니? 왜?"
왜냐고 묻는 네 눈이 이미 딴곳으로 간거 보면 무슨 일 있는거 맞거든? 크게 한숨을 내 쉰 하루카는 대걸레 자루를 교탁에 기대어 세워놓고 성큼성큼 유우키에게 다가갔다.
이미 다 챙겨놓은 유우키의 가방을 낚아채고 의자를 흔들며 놀고있는 유우키의 목덜미를 잡아채 그대로 교실 밖으로 끌고 나온 그녀는 유우키의 품에 가방을 안겨준뒤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센리 아저씨랑 싸운거면 가서 잘못했다 빌고 시간 남아 돌면 아줌마나 좀 도와드려. 청소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쾅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을 닫고 들어가 다시 대걸레 자루를 잡는 하루카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보며 유우키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상담받고싶은게 있어서 기다리던건데. 이미 쫓겨난 이상 계속 기다려봤자 하루카는 말을 듣기 전에 화부터 낼것이다.
앓는 소리를 내며 가방을 둘러 멘 유우키는 터덜터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하루카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비밀이 한가지 있었다.
호연의 권위있는 금융학자이면서 거대 기업 데본의 후계자로 알려진 츠와부키 다이고. 유명한 스톤 콜렉터로도 알려진 그는 바로 얼마 전까지 유우키, 자신의 소중한 연인이었다.
사귄 2년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행복했었다. 며칠씩 함께 밤을 보내기도 하고 그저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함께 있는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것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유우키가 기억하는 다이고는 언제나 자신의 말에 귀을 기울여주고, 언제나 다정하고, 언제나 멋진 미소를 띄고 있던 사람. 그러나 이따금씩 연락도 없이 며칠씩이나 사라져버리고, 겨우 돌아와 하는 말이 미안하다는 사과 뿐인 모습.
그리고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들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던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러워 지난 주 마지막 데이트때 충동적으로 이별을 고했다.
어쩌면 갑작스러웠을 이별 선언에도 다이고는 그랬느냐고, 이후로도 다치지 말고 건강히 잘 지내라 하고는 언제나처럼 떠나갔다.
좋아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은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금만 더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길 바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떠나가 버린 이후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고 때때로 나 혼자 좋아했던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른인 그와 달리 자신은 아직 어린 학생이기에, 자신의 철없는 모습에 질려버렸던건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래서 하루카에게 친구 이야기라며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했었는데.
힘없이 걸어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유우키는 정문 앞에 서있는 검은 자동차 곁을 지나가면서도 한숨을 내 쉴뿐 아무런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자동차의 창문이 내려가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 전까지.
"유우키 군?"
익숙한 목소리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 힘없이 처져있던 유우키의 고개에 힘이 들어갔다.
짙게 선팅이 되어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 자동차의 창문이 반정도 내려가 있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건 몇년째 TV와 라디오, 잡지 등에서 빈번하게 모습을 볼 수 있는 톱 연예인. 하얀 베레모를 얹듯이 쓰고 손을 흔들며 웃어보이는 미쿠리를 발견한 유우키의 머릿속이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미, 미, 미, 미쿠리 씨!?"
"쉿. 이목을 끌면 곤란하니까 일단 탈래?"
차 문이 열리고 그제서야 미쿠리가 여기에 있다는것을 알면 사람들이 모여들것이라는점에 생각이 미친 유우키는 엉겁결에 자동차에 올라 탔고, 탁 소리를 내며 자동으로 문이 닫힌 자동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어, 어…!"
당황하는 유우키의 옆에서 다리를 꼬고 턱을 괸 미쿠리가 씩 웃어보였다.
"걱정할거 없어. 때가 되면 제대로 내려줄테니까."
흰 셔츠에 연한 옥빛의 베스트. 흰색의 바지를 입은 다리를 꼰채 살짝 윙크를 하는 미쿠리의 턱을 괸 손목에 걸린 두개의 얇은 금색 뱅글이 찰랑였다.
"저… 아까, 제 이름을 부르셨는데요."
"아, 맞아. 미안해, 불러놓고 제대로 설명도 안해줘서. 일단 자기소개가 먼저겠지?"
수수하게 차려입어도 더할나위없이 화려한 미쿠리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유우키를 응시했다.
"초면이지? 유우키 군. 네 이름은 다이고로부터 들었어."
"다이고 씨요…?"
어리둥절한 유우키의 반응에 미쿠리는 작게 혀를 차더니 이내 다시 웃는 얼굴로 손을 뻗었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유우키의 턱 선을 따라 훑는다. 지금 이 상황이 더할나위없이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유우키지만 다이고의 이름이 나온 이상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물론 이 차를 탔을때부터 그의 선택지는 사라져버린 셈이었지만.
"그녀석과는 어릴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거든. 그렇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니 놀라운걸. 나에게는 매일같이 네 이야기만 했는데. 물론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경계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그만뒀지만."
다이고의 친구가 미쿠리라는것도 놀랍지만 다이고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는것이 더욱 놀랍다. 유우키가 기억하는 다이고는, 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러나 유우키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반대쪽 방향으로 다리를 바꿔 꼬고 미쿠리는 손끝으로 유우키의 턱을 짚어 고개를 들게 했다.
"아무리봐도 평범한 소년일뿐인데, 네 무엇이 그렇게 다이고가 빠지게 한걸까? 역시 귀여운 그 얼굴?"
"그게 무슨……."
"웬만한 여자들이 접근해도 관심조차 없던 녀석이, 아파서 정신을 잃을때까지도 네가 걱정할거라고 연락조차 못하게 하던데 그게 빠진게 아니면 뭘까?"
어렵게 입을 연 유우키의 말을 자르고 빠른 속도로 말을 내뱉는 미쿠리의 모습에 유우키는 오싹해졌다.
생글생글 예쁘게 웃고 있지만 지금 저 사람은 화를 내고 있는것이다.
"잠깐만요, 다이고 씨가 아프다구요?"
방금전 빠른 속도로 지나가버린 미쿠리의 말에서 걸리는 무언가를 감지해낸 유우키가 놀라 묻자, 미쿠리는 몸을 뒤로 젖혀 카 시트에 기대고 팔짱을 끼며 어딘지 내려보는듯한 눈초리로 유우키를 바라보았다.
"다이고는 잔병치레같은건 잘 없는 편인데 한번씩 아프면 크게 앓거든. 너와 사귀는 중에도 몇번정도 아팠는데, 걱정 끼치기 싫어서 말 안했을걸? 물론 지금 아픈 정도에 비하면 약하지만."
"지금도, 아파요?"
걱정어린 유우키의 얼굴에 다이고를 괴롭힌 만큼 괴롭히겠다고 다짐했던 미쿠리 마음속의 가시가 뭉툭해졌다. 말 잘못하면 나중에 다이고한테 맞는거 아닌가, 어차피 얘 데려가면 혼날거같은데. 마음속으로 갈등하던 미쿠리는 이내 한숨을 푹 내 쉬었다.
"열이 심해서 정신도 못차리고 있어. 며칠 된 모양인데 언제부터 아팠는지도 말 안해주고. 주치의 말로는 안그래도 무리하던것에 뭔가 큰 쇼크를……."
미쿠리의 말을 들으며 점차 하얗게 질려가는 유우키의 얼굴을 보며 역시 다이고가 아픈 이유는 이 아이구나 싶은 미쿠리는 한숨을 내 쉬었다.
"저기, 유우키 군."
"…네?"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하얗게 질린 소년을 보며 미쿠리는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를 떠올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송장 하나 치우겠거니 싶어 저지른 일이지만 설마 이런 말까지 하게 될줄은 몰랐다.
"다이고가 많이 답답한 타입이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부족한게 보이더라도 이해해 줘. 요령이 부족해서 변명도 제대로 못하는 녀석이니까."
잘못한건 잘못한거니까 변명은 하지 않는댔던가, 미쿠리의 중얼거림에 유우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이유였어요? 말없이 사라지고 연락이 되지 않던 것도,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만 했던것도. 그토록 혼자 아팠으면서도 그저 연락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다니. 왜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왜,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있게 했어요.
달리던 자동차가 멈춰서고, 유우키 쪽의 문이 열리자 미쿠리는 하얗게 질린 유우키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가 봐."
튕기듯이 뛰쳐나간 유우키가 펜트하우스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미쿠리는 한숨을 내 쉬었다.
한편, 펜트하우스 내의 엘리베이터에 탄 유우키는 떨리는 마음으로 지문인식기와, 그 위에 붙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때 다이고의 권유로 등록을 하면서도 함께 있을건데 굳이 등록을 해야 하냐 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불안한 손길로 지문인식기에 손 끝을 가져다 대자 익숙한 인장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늘 다이고가 착용하고 다니던 라펠핀. 아직 다이고에게 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 주저앉은 유우키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몇번이고 밟았던 푹신한 카펫에 내려선 유우키는 이내 한번도 수수로 열어본적 없는 문 앞에서 멈춰섰다.
숫자와 지문을 조합해야만 열리는 문. 늘 다이고가 열어주었기에 스스로 열어볼 필요도 없던 문이지만 이 문만 열면 다이고가 있다.
지문이야 엘리베이터와 동일한 시스템이니 등록되어 있을테지만 숫자는 무엇일까.
한참 고민을 하던 유우키는 틀리면 어쩌지, 망설이면서도 몇가지 숫자를 누르고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철컥, 잠김이 풀리는 소리에 문을 열고 뛰쳐들어간 유우키는 전면의 벽이 유리로 되어 노을이 그대로 집안에 비치는 그 붉은빛이 너무나도 불길하게 느껴져 서둘러 침실로 달려가자 흰 시트에 폭 싸여 잠들어있는 다이고가 있었다.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에 흠칫해 고개를 숙여 심장 소리를 들어보고, 코 밑에 손을 가져가 숨을 쉬고 있다는것을 확인한 뒤에야 유우키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아직도 뜨거운 열을 내리기 위해 미지근한 물을 담아와 수건에 적셔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땀에 젖은 셔츠를 벗기기 위해 단추를 풀면서도 이건 간호를 위한거라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드러난 앙상한 몸을 보며 유우키는 울컥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열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부지런히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닦아내면서 발견한 팔의 상처에 또다시 트라우마가 생긴걸까 걱정하면서도 속상한것은 어쩔도리가 없었다.
그날 밤, 언제나 긴소매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한 양 팔에 새겨진 오래된 흉터들을 보며 속상해하는 자신을 보며 앞으로는 절대 이 몸에 상처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 했었는데, 다이고 씨는 그날의 약속을 기억이나 할런지.
이제 다이고 씨는 자신의 것이니 허락 없이 상처내면 화낼거라고 그날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먼저 이별을 고한것도 자신이고 그를 저버린것도 자신이지만 그만큼 새로 새겨진 저 상처가 더욱 아파보였다.
"다이고 씨, 제발 부탁이니까 일어나요……."
이렇게 누워있지 말아요.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않을게요. 말없이 사라져도 돌아와주기만 하면 돼요. 욕심부리지 않을게요. 제발, 제발 일어나요. 일어나서 날 봐줘요. 언제나처럼 유우키라고, 이름을 불러줘요.
힘없이 늘어져있던 다이고의 한 손을 붙잡아 단단히 손가락을 얽고 상처투성이의 팔을 어루만지던 유우키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지근했던 물이 차가워지고 이 물로 몸을 닦았다가는 감기에 걸릴거라 생각된 유우키가 물을 갈러 가기 위해 일어나려고 얽힌 손을 풀려고 하자 작은 신음소리가 들여왔다.
강하게 쥐인 손을 풀어내려 해서 인가 싶어 더욱 조심스레 얽힌 손가락 하나하나를 풀어내자 힘이 빠진줄 알았던 다이고의 손이 다시한번 단단히 유우키의 손가락에 얽혔다.
"…우키……."
작은 소리였다. 신음소리보다도 미약한 작은 목소리에 놀란 유우키가 고개를 들고 다이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이고 씨? 다이고 씨?"
파르르 떨리는 가느다란 속눈썹에 아쿠아마린을 닮은 그 푸른 눈을 보여주지 않을까, 단단히 손가락을 얽은 손을 모아쥐고 유우키는 다이고를 불러보았지만 아직 때가 일렀는지, 다이고의 눈은 떠지지 않았다.
"…지마, 가…지마…유우…키……."
이름조차 힘겹게 부르면서 가지말라 말하는 다이고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에 유우키는 입술 안쪽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렇게까지 힘들어할줄 몰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기에 괜찮은줄 알았다. 이 사람이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 하는게 자신탓이라는 생각에,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것에 유우키는 그대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입술 안쪽이 터졌는지 비릿한 맛이 났지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이 이 사람에게 준 고통을 생각하면.
"다이고 씨. 저 여기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계속 여기 있을게요."
그러니 이제 아파하지 말아요.
기도하듯이 다이고의 손을 모아쥐고 무릎을 꿇은 유우키는 지금까지 한번도 바라지 않았던 신에게 처음으로 기도했다. 다이고의 무사를. 쾌유를. 이 사람의 행복을.
무거운 눈꺼풀을 힘들게 밀어 올린 다이고는 묘한 갑갑함에 손을 보았다. 있을리가 없는 유우키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머리를 가져다 댄 채 잠들어 있는 모습에 아직 잠이 덜깼나 싶었던 다이고가 다른손을 들어 유우키의 머리를 쓰다듬어보았다. 손에 익은 보드라움. 진짜다. 이건 진짜 유우키다.
지난날 이별을 고하는 모습에 보고있기 힘들어 두고왔던 유우키가, 지금 그의 방에서 그의 손을 잡은채 잠들어 있었다.
"으으……."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묘한 소리를 내는 유우키의 어깨를 톡톡 건드려보니 잠들어있던 유우키의 푸른 눈이 반짝 떠졌다.
처음에는 멍하니, 그리고 점차 동그래지고 커지던 눈동자가 이내 두어번 깜박이더니 와락 유우키가 다이고의 품에 안겨들었다.
"다이고 씨!"
영문도 모른채 갑자기 품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한 유우키의 등을 토닥이던 다이고는 벽에 걸린 시계가 가리키는 날짜와 시간을 보고, 자신의 셔츠가 벗겨져 있다는것과 침대 옆 사이드테이블에 놓인 물그릇과 수건을 보고 이내 상황을 알았는지 난감한 얼굴로 유우키의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우키? 나는, 괜찮으니까."
오래 앓은 탓인지 목이 잠겨 쉰소리가 났지만 개의치않고 유우키를 달래려 하자 아예 올라타 부둥켜 안는 모습에 다이고는 적잖이 당황했다. 원래 애교가 없는편은 아니었지만 이정도로 먼저 다가오지는 않던 아이였다.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새침하게 굴기도 하던 아이가 오늘따라 떨어지기 싫어하는 모습에 다이고는 그저 등을 살살 쓸어주며 달래볼 뿐이었다.
"미안해요."
응?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등을 토닥이며 어떻게 아이를 달랠까 고심하던 다이고가 뒤늦게 웅얼거리는 유우키의 목소리를 이해했다.
"미안해요 다이고 씨. 정말 미안해요.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려서……."
"흐응… 무슨 욕심을 부렸을까?"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이는 목소리에 유우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허둥지둥 품을 벗어나려 하지만 스스로가 먼저 안겨들었던데다가 등 뒤로 팔을 교차시킨 다이고가 힘을 주어 끌어안고 있었기에 유우키는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벗어나지 못했다. 힘을 주어 억지로 벗어나려 한다면, 조금전까지 아파했던 다이고에게서 벗어날수 있었겠지만 어째서인지 강하게 나갈수가 없었기에 유우키는 그냥 다이고의 품에 얼굴을 묻는것을 선택했다.
"응? 유우키. 무슨 욕심을 부렸는지 말 안해줄거야?"
귓바퀴를 살짝 깨물며 물어오는 다이고의 낮은 목소리에 울상을 지은 유우키가 웅얼웅얼 입을 열었다.
"다이고 씨가… 연락이 안되면 걱정되는데 이유도 말 안해주시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막 웃어주시고 하시니까……."
"내가 유우키를 소중히하지 않는것 같았어?"
웅얼대던 목소리가 그치고 귀까지 빨갛게 물든 유우키가 몸을 움츠리자 다이고는 후후, 작게 웃더니 부끄러워하는 소년의 어깨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살짝 깨물어 자국을 남겼다.
"내가 이런걸 하는 사람은 유우키밖에 없는데."
"으…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아직 토요일 아침이니까 시간은 많아."
쪽, 쪽, 가볍게 이마며 코, 볼, 목, 어깨에 사정없이 버드키스를 쏟아붓는 다이고의 모습에 울상을 지은 유우키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다이고 씨, 아침부터 이건 아니잖아요!!!'
+여담이지만, 다이고 집 비밀번호는 유우키 생일이었습니다!
쓰고나니 이거 왜이리 짧니…
유우키 집에 말 안하고 외박했는데 전화도 걸려오지 않던 이유는 하루카가 둘러대서(…) 하루카는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거든요! 우리 하루카가 얼마나 다부지고 똑소리나는 앤데!!
'Pokemon > Short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이유우] 별 (0) | 2016.08.22 |
---|---|
[윤진성호] 너를 위해. (0) | 2016.08.22 |
[칼로스조] 시험이 뭐라고! (0) | 2016.08.22 |
[NINE] 칼로스에서의 마지막 (0) | 2016.08.22 |
[NINE] 은빛산 정상 (0) | 2016.08.22 |
Comments